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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8 23:37
  • 호수 1019

사랑을 나눠주세요 그 후
들꽃처럼 피어난 이옥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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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기능대회 양장부문 은상
자활센터 ‘바느질사업단’으로 새 삶 얻어


그는 자신을 ‘들꽃’이라 말했다. 수많은 고초와 풍파를 겪어도 한 풀 꺾임 없이 묵묵히 꽃을 피워내듯 그는 들꽃처럼 웃는다.
본지 제845호 ‘사랑을 나눠주세요’로 보도된 이옥하 씨는 교사였던 두 부모님 아래 무남독녀로 태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공주님’으로 자랐다. 원피스에 가죽가방, 두 손에는 생과자까지. 그야말로 부족함 없는 유년시절이었다. 하지만 17살, 그의 삶이 완전히 뒤집혔다. 척추결핵으로 3개의 척추를 빼는 대수술을 했으며 퇴원하고 회복기에 접어든지 15일 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고향 집을 뒤로 하고 혼자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 양장점에서 기술을 배우며 월급 5000원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척추결핵균이 재발해 쓰러졌다. 하숙집을 운영하던 이모 댁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우연히 의무관이었던 하숙생의 도움을 받아 몸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옥하 씨는 “그 분 이름이 임철환 씨인데, 찾으려고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며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후 서산으로 거취를 옮겼다가 연고 하나 없는 당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혼자 외롭게 자라 가족이 많은 남편하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종갓집 장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결혼 후에도 어려운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한 딸(현아)이 대학교에 가고 싶어 했으나 “돈이 없으니 다른 곳에 가라”는 말에 며칠 내내 우는 딸을 보면서 그는 가슴이 미어졌다.
어렵게 살아온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폐에 문제가 생겨 한 쪽 폐를 모두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병원을 오가고 수많은 약을 먹어야 했던 그는 당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본지 ‘사랑을 나눠주세요’에 보도되기도 했다.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는 들꽃처럼 다시 일어섰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 몰랐던 그가 수급자로 선정돼 폐 수술 뒤 의료 혜택과 자녀 교육비 등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다. 덕분에 충남당진지역자활센터(센터장 송영팔)에서 바느질사업단 ‘바느질세상’에서 자활사업을 하고 있다.
전에도 바느질 기술이 있었지만 3년째 바느질사업단을 하며 실력이 부쩍 늘어난 것도 큰 보탬이 됐다. 그 덕분에 충청남도 장애인기능대회 양장부분에서 2위라는 값진 성적을 거뒀다.
또한 첫째 딸 현아 씨는 형편 상 가고 싶어 했던 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가 현재는 서울에 위치한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번 돈으로 야간대학까지 다니며 제 꿈을 다시 되찾았다. 둘째 딸 진아는 이제 대학교 졸업반으로 사회생활을 앞두고 있으며 남편 유은덕 씨는 무사고 경력을 살려 개인택시를 목표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힘들다고 이혼하고 제 자식들을 버리는 일이 다반사잖아요. 하지만 자기 자리를 반드시 지켰으면 좋겠어요. 힘들어도 꾹 참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든요. 모두 힘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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