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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9 21:37
  • 호수 1019

사랑을 나눠주세요37
죽음보다 두려운 건 잊혀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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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석주 사진작가 어머니 김유순 씨
아들 데려간 간암, 엄마에게도 찾아와
내년 9월 이후 의료비 지원 중단

 암은 강 건너 남 얘기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 아들 석주를 데려갔고 이제는 내 목숨마저 내놓으란다.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간암이 김유순 씨(59) 몸에 깊숙이 들어와 통증을 파고 또 파헤치고 있다.
처음 아들이 간암선고를 받았을 땐 그저 공기 좋고 맑은 곳을 가서 살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당진 사기소동으로 아들과 함께할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아들 故 이석주 씨는 항암치료에 머리가 빠지고 온 몸에 진물이 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집 뒷편에 ‘호련의 숲’이라는 작은 갤러리를 만들 정도로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김유순 씨에 전했다. 그렇게 아들은 사진집을 남기고 지난 2010년 4월 24일 영원히 어머니 가슴 속에 묻혔다.
 
병과 찾아온 통증 그리고 생활고
아들을 데려간 간암이 고스란히 김 씨에게도 찾아왔다. 간암 때문에 척추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마쳤지만 7개월 만에 다시 간암이 재발해 2차수술을 받아야 했다. 김 씨는 2차 수술 이후 오른쪽 몸 전체와 관절 등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엔 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며 통증클리닉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한 번에 6만 원이 드는 통증클리닉은 기초생활수급비 65만 원이 전부인 그에게 가혹할 뿐이다. 그는 “통증을 참고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통증클리닉을 찾는다”고 말했다.

병원비, 집세 등을 지불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이 거의 없다. 거기다 병환으로 식단까지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어 생활비가 다른 이들보다 빠듯하다. 그렇게 병원비 중 80%를 지원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도 내년 9월이면 지원이 끝나 앞으로 병원비를 마련할 걱정에 눈앞이 캄캄하다.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만 저조한 주문량으로 수익금이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죽음보다 두려운 외로움
“이젠 다들 나와 석주를 잊어가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났고 그게 당연한 거죠. 이해해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못내 얼굴에 씁쓸함이 드리워졌다. 그가 간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의 연락과 도움이 이어졌다. 그 덕분에 그나마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것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곤 했다. 늘 고마웠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연락도 하나둘 희미해졌다. 이미 남편과 아들은 그의 곁을 떠났고 결국 유일하게 남은 대화상대는 아들이 남겨 놓고 간 식물들이다.

김유순 씨는 “이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조차 없다”며 “가끔은 신체적 고통보다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도 종종 아들 지인들이 연락해줘 고마울 따름이다.
“아들이 남긴 물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내가 얼마나 살진 모르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요.”

추억 담긴 집 떠나야
사기소동 집은 사랑하는 아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아직도 곳곳에는 아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들이 떠난 뒤 집주인이 임대료를 낮춰줬지만 그에게는 1년에 40만 원이라는 돈조차 가볍지만은 않다. 서울에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지급된 영구임대아파트와 아들의 숨결이 남은 이곳을 오가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집안의 물건과 페인트 칠까지, 집은 아들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그래서 가까스로 생활을 이어왔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 그는 한 달 여 간 잠도 못 자고 속앓이를 해가며 결국 당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은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들의 짐 정리다. 비좁은 영구임대 아파트의 작은 평수는 아들의 물건을 모두 가져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들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진 않았다. 아들의 물건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쓸모없는 물건 취급을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물건들을 모두 아들에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벌써 몇몇 짐은 집 앞에 있는 나무 아래서 태워 보냈다. 그는 아들 생각이 날 때면 이 나무를 껴안거나 나무 앞을 서성인다.

아직도 아들에게 보낼 짐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들과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서 계속 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들의 짐을 모두 정리할 때까지 그의 마음이 일렁이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김유순 씨를 향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진시대 355-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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