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18 13:58 (목)

본문영역

[마을의 전설을 찾아서 2] 내경리 고래이야기
고래 잡으러 떠나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50년 전 고래이야기 전해져
고래의 얼 기리기 위해 ‘고래탑제’

“방조제가 생기기 전 내경리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었지. 조수의 차가 굉장히 높아서 물이 빠지고 난 뒤면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바닥에 남아있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고래가 떠밀려 왔지 뭐여. 이미 숨이 끊어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고래를 잡아먹었지.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마을의 청년들이 하나 둘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 게지. 이후 마을 사람들은 고래의 원한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해 제사를 지냈고, 그것이 굳혀져서 지금까지 오게 됐지. 지금도 매월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고래의 혼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지.”

1. 고래가 발견 됐다고 전해졌던 장소인 내경리 인근 저수지

250년 전 길 잃은 고래
來(올 내)자에 鯨(고래 경)자를 쓰는 내경리는 오래 전부터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해 ‘고래원’이라고 불렸다.  250년 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라 실제로 큰 고래를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지만 이야기는 남아 마을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40여 년전 새끼고래가 마을로 떠내려 온 것을 본 주민들도 있다.
내경1리 이남일 이장은 “이전에 내경리 근처로 고래가 떠내려 온 걸 직접 본적 있다”며 “몸은  까맣고 배쪽은 흰색을 띄는 새끼 고래였다”고 말했다.  

2. 내경리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 고래탑

고래 형국 내경리
내경리 김필배(90) 옹에 따르면 故 신상균 전 구장은 “이곳을 지나가던 대사가 마을의 동쪽은 영험한 영인산, 서쪽은 자비로운 가야산, 남쪽엔 지덕을 겸비한 도고산이 수호하고 있는 고래 형국”이라며 “후세에 큰 부자와 큰 건물, 성인군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늘 말하곤 했단다. 조선시대에는 천석꾼이 있었고, 1944년에는 내경초등학교가 세워졌으며 성결교회, 우강농협 창고 등도 들어섰다.

김필배 옹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대사의 예언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경리는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된 만큼 마을이 평안해 마을 사람들은 이것 또한 고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이남일 이장(왼), 김필배 옹(오)

“여생 고래탑제와 함께 할 것”

김필배 옹은 으뜸마을 사업 지원 당시 마을의 고래이야기를 엮어 시상과 1500만 원을 받아 고래탑을 세우고 정기적인 고래탑제를 지낼 수 있도록 기여했다. 그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제사 지낼 인원이 부족해 아쉽다”며 “오래도록 고래탑제가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경1리 이남일 이장은 “처음에는 고래탑제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며 “지금은 모두가 잘 참여해줘 제사를 수월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래탑제 때문인지 내경리는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이 됐고 마을이 무사태평합니다. 제 여생동안 마을의 수호신인 고래를 기리는 제사를 쭉 이어갈 예정입니다.”(김필배 옹)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많은 전설들이 전해진다. 스쳐지나가는 고개, 바위, 길 하나에도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고 숱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지역의 전설들은 당진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자리를 잃고 사라지고 있다. 이번 기획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많은 이들에게 지역의 이야기를 전달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자 시작됐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