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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김수일 영등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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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풍랑을 이겨낸 4전5기의 구청장

출향인 인터뷰-김수일 영등포구청장

시대의 풍랑을 이겨낸 4전5기의 구청장 “내고향은 대호지

“영등포구에서만 스물일곱번이나 전·월세방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지역과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의 시련·고난 함께한 야당출신 정치인

격랑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그 거센 물줄기만큼이나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 오욕으로 점철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동전의 앞면보다는 뒷면이 되었던 사람들.

김수일(57세) 영등포구청장의 인생은 순탄하지 못한 길을 걸어야 했던 많은 재야·야당출신 정치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유신투쟁과 5공 치하 ‘고대앞 시위’ 등으로 7차례 연행·구속되면서 월·전세방을 27차례나 옮겨야 했던 그의 전력은 민주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과 역사를 함께 한다. 한 때 불온한 인물로 간주돼 감금과 투옥의 나날을 보내야 했고 정치규제법에 묶여 공민권을 박탈당했던 시절에서 이제는 주민의 손에 의해 뽑힌 어엿한 민선 구청장이 되었으니 이것을 두고 격세지감이라 했던가.

그를 만나러 영등포구청을 찾았다. 처음 접한 그의 얼굴에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환한 얼굴에는 모진 풍파에 생채기난 세월의 아픔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기자에게 악수를 청하려 발을 떼는 걸음걸이가 어색하다. 선천성 소아마비. 천형과도 같았던 장애는 그에게 내린 첫번째 시련이었다. 육신의 장애와 절대권력에 의한 폭력, 전세방을 전전해야 했던 생활고 등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이제는 세월의 아픔을 모두 가슴에 품을 듯한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한층 성숙한 민주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신체장애·정치적 역경과 맞서다

그의 고향은 당진군 대호지면이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호지면은 당시 서산군에 속해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몇십리를 걸어야 했던 길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눈비가 쏟아지고 겨울바람이 몰아칠 때는 더없이 고역스런 길이었다. 갑작스레 소낙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비를 피해 달려가는 동무들을 절뚝거리는 다리로 쫓아야 하는 어린 동심은 그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그는 15세 되던 해 6. 25동란 때, 피난 중 한솥밥을 먹은 인연으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이모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곳에서 영등포 공고를 졸업한 그는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의 길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법관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1학년 때 4.19혁명을 겪었고, 2학년 되던 해 5.16 쿠데타를 겪어야 했다. 굴절된 현대사의 소용돌이는 그로 하여금 법관의 꿈을 접게 만들었다.

“고시나 취직보다 민주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서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민중당 영등포지구당 선전부장과 국회의원 비서관을 겸직하며 파란많은 정치역정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시절에는 반유신투쟁으로 7차례나 연행, 구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전두환 정권시기 양김씨가 공동의장으로 있던 민추협에서 그는 노동국장과 회보 부주간을 맡아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의 위장취업(그는 이를 고학력 취업이라 불렀다)과 노사분규 문제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 당시 그는 이른바 ‘고대앞 시위사건’으로 박찬종, 한광옥, 조순형 의원 등과 함께 구속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는 시련을 겪는다. 이 사건으로 알게 된 허인회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과는 그후로도 각별한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며 현재는 김 구청장의 관내인 영등포구에서 컴퓨터 유통업에 종사하는 관계로 특별한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4번 낙선,

민선 구청장으로 새로운 도전

절대권력의 억압으로 시민사회가 질식했던 시기, 김구청장에게 있어 의회는 자신의 소신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10대 총선에 처음 도전하여 차점으로 낙선했다. 11대 총선은 전두환 정권시기 정치규제법에 묶여 공민권을 박탈당하는 바람에 출마하지 못했고 2차, 3차에 걸친 해금후에 다시 12, 13, 14대 총선에 도전했으나 역시 차점 낙선. 항상 근소한 표차가 그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군사정권이 역사에서 퇴장하고 문민정부와 국민정부로 이어지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가 이루어졌고, 이 물줄기를 어느 누구도 돌려 놓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김구청장은 그동안 성원과 지지를 보냈던 구민을 위해 헌신하고자 지방자치선거에 출마하게 됐다고 밝힌다.

국회의원의 꿈에서 구청장이라는 현실앞에 서있는 그는 “발로 뛰는 행정”을 외치며 구민곁으로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가 관할하는 영등포구는 국회의사당과 KBS, MBC 등 대표적인 언론사와 전경련 회관, 증권거래소가 있다. 그야말로 정치·언론·경제·금융의 중심지인 것이다. 한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걸맞는 구정을 펼쳐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김구청장에게 놓인 셈이다.

“영등포구에서만 27번이나 전·월세방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지역과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려웠던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그는 지난 7월 1일 임기가 시작되면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위민행정을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김구청장이 제창하는 영등포구의 구정운영 방향은 △구민과 함께 하는 구정구현 △경제위기 극복 △구정전반에 걸친 개혁 △선진복지, 문화행정구현 △쾌적한 미래형 도시환경 조성 등 5가지이다.

이러한 5대 구정목표하에 김구청장이 먼저 힘을 쏟는 분야는 대민친절봉사이다. 명찰패용과 업무실명화를 통해 공무원의 권위적인 행태를 없애고 신뢰감주는 공무원상을 정립하려 하고 있다. 또한 “생활민원봉사 기동대”를 운영하여 각 동마다 오토바이를 배치, 지정된 코스를 순회하며 민원신청을 접수하고 신청서류를 배달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학교폭력 예방,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 등의 민원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주민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김구청장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공공근로를 확대하고 실직자 생계를 지원하고 있으며 취업정보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제품 유통·판매망을 구축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숙자들을 위해 합숙소 수용 및 무료급식과 취로사업 알선 등도 추진하고 있다.



고향 당진과의 연계사업 고민

올해 여름에 있었던 수해는 김구청장으로 하여금 고향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해 당시 영등포구의 새마을운동협의회와 평통 등에서 자발적으로 성금과 위문품을 들고 당진을 방문해 고귀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또한 수해 때 찾은 것을 잊지 않고 충남 쌀축제 때 당진군수와 각 읍·면 농협조합장이 영등포구를 방문하여 서로간에 깊은 우의와 교류를 나누었다.

김구청장은 구청직원들에게 “고향인 당진사람들은 수해 때 입은 도움을 추수 때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구내식당에서 당진쌀 시식회를 갖도록 했다.

앞으로 당진산 농·축산물을 영등포구민에게 직판할 수 있는 거래장소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몇몇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당진쌀 팔아주기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좀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김구청장은 말한다.



사람냄새나는 체취는 간직해야

김구청장은 “순리에 따라 정도를 가자”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그는 “충청인은 약간의 흠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냄새나는 사람이 확률적으로 많다”며 “옛날에는 이웃끼리 가축이나 꽃나무를 나누는 것이 일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 같다”며 아무리 각박해지더라도 조상들이 물려준 사람냄새나는 체취는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낸다.

각종 산업단지가 들어서서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을지라도 이로 인해 마음이 황폐해져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조상들이 잘해서 우리들이 충청인의 대접을 받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잘해야 후손들이 충청인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후손에 대한 책임을 역설한다.



사람사랑에 대한 짙은 향기

열다섯살 때 고향인 당진에서 상경하여 영등포에 뿌리내리면서 선천성 소아마비와 반독재 투쟁으로 인한 연행과 옥고, 국회의원 4회 낙선 등의 시련을 극복하고 40만 영등포구민의 아버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수일 구청장. 시련속에 단련된 성품 탓인지 사람사랑에 대한 그의 철학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직원들과 업무에 대해 협의하는 그의 모습에서 짙은 사람냄새가 가득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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