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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최종길 편집국장-창간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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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주년에 부쳐



“창간정신으로 되돌아가 신문제작에 임하겠습니다

5주년 지령 250호 발행을 맞이하며"



“98년은 지역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한해였다.

당진시대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인력과 지면의 축소로 독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따뜻한 기사,

생활에 유익한 기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앞선다.

하지만 독자와 광고주들의

끊임없는 성원과 애정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지역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한달남긴 98년을 되돌아 볼 때 보람과 기쁨보다는 무거움이 어깨를 짓누른다. IMF가 시작되고 한보부도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지역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여름에는 개군이래 최대의 홍수로 시가지와 농토가 잠겨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5월에는 금동삼존불 불법반출문제로 내내 여론이 들끓었고, 6.4 지방선거에서는 여전히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하반기에 국가적인 개혁흐름에 발맞춰 당진군의 조직개편과 이어진 인사발령에서 민선 2기 김낙성 군수의 개혁의지가 표출될 것을 기대했던 군민들은 개혁앞에 맞선 일부 공직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강력한 저항과 그 저항 앞에 무기력한 2기 민선시대를 절감해야 했다.

주민의 손으로 뽑은 민선군수시대이지만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고 권위적이며 일부 공직자들에게는 생계수단을 위한 사기업 쯤으로 여겨지는 풍토가 공직사회에 남아있음을 통감하였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지역발전과 후배를 위해 명예롭게 퇴임한 5급 공직자가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낸 세금으로 이들을 먹여살린 당진군민의 더없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울하고 불행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쓰레기매립장 사태의 전격적인 타결, 도민체전 2위, 수해를 딛고 일어선 농민들의 노력으로 쌀 생산량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다수 공직자들과 군민들의 노력은 우리에게 또다른 희망을 안겨주었다.

창간 5주년을 맞이하는 당진시대 신문사도 98년은 그 어느때 보다도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였다. 월간 ‘말’지에 모범적인 언론사로 보도가 되기도 하였고, 당진시대를 동아방송전문대에서 다큐멘타리로 제작하고, 대전·충남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기관지에도 보도되었다. 또한 한국언론학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지역신문 최초로 초청되기도 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당진시대를 널리 알린 시기였다.

하지만 지역경제의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대내적으로는 혹독한 시련기였다. ‘당진장터’ 발행을중단했고, 신문지면이 타블로이드 배판 8면으로 축소되고, 동고동락을 같이해 온 창간멤버가 사직하는 등 12명이던 직원이 6명으로 줄어드는 본의아닌 구조조정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인력·지면부족으로 자연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기사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아쉬움 또한 컸다. 어려운 시기에 독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따뜻한 기사, 경제에 관한 다양한 정보, 교훈이 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록새록 전해주고 싶었지만 취재인력의 부족, 지면의 축소 등으로 지역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독자와 광고주들의 끊임없는 성원과 애정에 힘입어 거센 풍랑이 불어 닥친 한 고비를 넘겼고 99년에는 취재인력과 지면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여러분들의 사랑에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5년이 지나면서 어느새 자리잡았을 나태함과 교만, 편견을 떨치고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창간정신으로 되돌아가 신문제작에 임할 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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