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14.09.26 20:26
  • 호수 1027

세상사는 이야기18
‘합덕 가위손’ 부자(父子) 이발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합덕읍 운산리 ‘고등이용원’ 김홍제·김동수 씨

단골손님만 500여 명
50년 째 이발 봉사 이어와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맴돈다. 그 가위질 동선을 따라 장판이 하얗게 바래져 있다. 헌데 빛바랜 장판이 두 군데다. 그것마저 똑 닮았다. 얼굴도 같고 가위질도 같으니 그림자마저 닮는가보다. 합덕터미널 옆에 자리한 고등이용원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부자(父子) 이용원이다.

아버지 김홍제 씨 이야기
부족함 없이 살던 김홍제 씨 가족은 고향인 서산을 뒤로 하고 상경 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도 잠시 6.25 전쟁이 발발하며 당진에 오게 됐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절, 돈 한 푼 받지 못해도 밥이라도 먹여주는 것이 반가웠기에 그는 이발사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다. 물지게를 날라 사람들 머리를 감겨주며 어깨 너머로 이발기술을 배웠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

그 후 1965년이 되던 해 당진을 다시 찾았고 합덕에 이용원을 차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72세다. 곳곳에 패인 주름들이 그의 나이를 가늠케 한다. 50여 년이 훌쩍 넘도록 가위질만 해 왔던 그의 곁엔 500여 명의 단골손님이 있다.

아들 김동수 씨 이야기
합덕초등학교 육상선수였던 김동수 씨(42세)는 대전체고로 진학했다. 하지만 몸에 무리가 온데다 군대에서 허리까지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던 아들이기에 아버지 김홍제 씨는 그 쪽으로 진로를 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이어 이용사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그는 이용사 자격증을 따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아버지 뒤를 이어 가위를 잡았다.

똑 닮은 아버지와 아들
가위질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똑 닮았다. 부전자전이라더니 아버지의 가위질마저 아들이 따라 닮았나 보다. 처음에 아들이 이 길을 걷는 게 탐탁치 않았던 김홍제 씨는 “이 일이 싫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에도 꿋꿋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으려 하는 모습에 그는 이용사로써 자부심도 느꼈다. 아들에게 물려줘야 할 때라고 느낀 그는 고등이용원을 아들 김동수 씨에게 넘겨줬다. 지금은 그저 아들을 도울 뿐이다. 
서로 함께 하기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김홍제 씨는 하고 싶은 말(?)을 손님들과 편하게 나누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은 젊은층을 아버지는 노년층의 손님을 꽉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등이용원의 손님 연령층이 다양하다. 또한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활동을 하는데도 부담이 없다. 그 덕에 김홍제 씨는 (사)한국이용사중앙회 당진지부장을 12년 째 이끌어가고 있으며, 아들 김동수 씨는 배드민턴을 취미로 하고 있다.
“나는 우강반점을 좋아하는데 하나만 시키면 멀다고 안와. 근데 아들 있으니까 2개 시킬 수 있어 배달을 해주더라고. 그런 게 좋은 거지 뭐.”

“내가 저승사자여~”
사람들은 김홍제 씨를 저승사자라 부른다.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그가 머리를 만지면 얼마 안 가 저 세상으로 떠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떠나는 이도, 떠나보내는 가족들도 그에게 고마워한다. 병세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면 언제 어디든지 출동하기 때문이다. 오랜 벗의 아버지도, 동네 아저씨도 그의 손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배웅했다.
김홍제 씨는 이용원을 운영하며 1960년대부터 봉사를 해 왔다. 돈이 없어 머리손질을 못하는 학생들, 머리 한 번 제대로 감지 못했던 거리의 사람들까지. 그는 “가난했던 예전에는 사람들 머리에 이가 그득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게 봉사지. 한 사람이라도 날 필요로 하면 어디든지 갈거야. 이런 정신으로 하는 게 진정한 봉사 아니겠어?”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