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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다리다 돌이 된 삼형제

마을의 전설을 찾아서 12<마지막> 합덕읍 운곡리 봉호산 형제바위 박초롱l승인2014.10.24 22:10l(10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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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붙어있는 모양의 바위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산신제 지내

힘이 장사인 농부 박 씨가 살고 있었다. 성실한 그는 아내와 아들 셋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구와 싸우던 중 목숨을 잃게 됐다. 그 기세로 왜적들은 박 씨의 아내까지 납치해서 데려가 버렸다. 세 형제들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됐고, 봉호산에 올라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산신령에게 매일 빌었다. 눈이 많이 오던 어느 날, 기도하던 삼형제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말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눈보라 속에서 삼형제의 형상을 한 바위가 생겨났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왜구들에게 잡혔던 어머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삼형제를 만날 수 없었다. 아들들이 기도를 드리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식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다. 이후에도 그는 아들이 보고 싶으면 봉호산을 찾았고, 여승이 산을 오를 때마다 어머니를 찾는 아들의 통곡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봉호산에 산신제를 지내왔다. 현재는 산신제를 지내지 않지만, 호랑이를 마을의 신으로 모셨던 이곳은 산신제를 지낸 후 마을 근처에 범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을 본 주민들이 종종 나타났다. 남완희 노인회장은 “범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지만 발자국을 본 사람들은 꽤 있었다”고 말했다.

 

냉수마찰해도 추위 못 느껴

“예전엔 제사를 지낼 때면 온 마을에서 제사에 소지를 올리기 위해서 쌀, 누룩, 돈까지 바치기도 했어요. 그만큼 이 봉호산이 영험하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이전에 봉호산은 봉고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명이 변경되면서 봉호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봉호산 산신제를 지내면 교동1리, 교동2리, 서동리, 중동리, 하운리, 운곡리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사에 참여했다. 

산신제 및 노신제를 지내는 제관을 뽑는 것은 엄격했다. 그 사람의 생기복덕으로 제관을 정하고, 한겨울에 차가운 제수로 목욕을 했다. 또한 살생을 해서도 안돼고 피를 봐서도 안됐기 때문에 이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었다. 집에서 부인이 월경을 해도 자격이 박탈됐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엄동설한에 차가운 물로 몸을 씻지만 제관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고. 또한 추운 겨울에 술을 담구는데도 3일이면 술이 발효돼 술을 제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

남 노인회장은 “나도 제관으로 정해져 제수로 목욕을 한 적이 있었다”며 “그 당시 정말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기창 이장, 남완희 노인회장

“희미해지는 우리마을의 역사”

 

   
 

“요즘은 누가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더 많아요. 마을에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만큼 전통도 함께 사라지고 있어 아쉽습니다”(김기창 이장)
“산신제를 지내온 것은 아마 백년도 더된 일일 거에요. 하지만 이제는 마을의 전설이나 산신제를 자세히 알던 어르신들도 다 돌아가시고 몇 남지 않았어요. 어떤 것들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지요.”(남완희 노인회장)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박초롱  long91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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