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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열이’체를 기대해주세요
꿈을 좇는 아이들3 서예 성열이 학생(호서고3·부 성형모·모 양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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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학원에서 집까지 오가던 길
전국에서 2개뿐인 서예 디자인학과 합격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면 성열이 학생은 친구 따라 ‘붓’을 잡았다. 열이 학생이 잡은 붓은 꿈을 그리며 그가 걸어 나가야 할 길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많은 이들에게 서예를 알리고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열이 학생의 길을 담았다.


6학년 때 쏟아진 ‘금’빛
초등학교 5학년, 열이 학생이 12살이었을 때 친구 따라 서예를 배울 수 있는 상록묵향회에 발을 들였다. 붓을 잡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열이 학생은 당시 상록문화제에서 동상을 입상했고 점점 실력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1년도 채 안 돼 충청남도 미술 실기대회 금상, 상록문화제 금상, 국가보훈예술협회 특선을 하는 등의 연이어 금빛 상장을 수상했다. 열이 학생은 “6학년 때는 ‘금’상만 받았다”며 “당시 수상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일하면서 ‘내가 이 맛에 일한다’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열이 학생은 제 실력을 찾고 점점 서예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에 접어야 했던 서예
하지만 대학 입시가 걸림돌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서예였고, 서예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열이 학생도,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서예에 재능을 갖고 있던 열이 학생도 결국엔 서예를 취미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틈틈이 대회가 있을 때면 주말도 반납해가며 상록묵향회를 찾아와 대회를 준비하곤 했다. 취미로 하는 서예였음에도 열이 학생은 매년 상록문화제에서 금상 및 대상을 수상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 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당진시 대표로 도교육청 대회에 출전했다. 열이 학생은 “대회라는 핑계가 있어야 서예를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했다.

교과서 구석에 그려진 글씨
고등학교 3학년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멍하니 있던 열이 학생은 문득 교과서를 보았고,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책 모퉁이에 써내려간 글을 발견했다. 열이 학생은 “공부보단 글이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열이 학생은 바로 상록묵향회 김용남 원장에게 서예에 생각이 있음을 전했고 김용남 원장의 “한 번 와 봐라”는 말을 계기로 바로 정식으로 서예의 길을 걷게 됐다.

새벽녘 집까지 오가던 발걸음
현재 전국의 대학교 중 서예와 관련된 학과는 경기대와 대전대 그리고 원광대가 있지만 원광대는 올 해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결국 전국에서 서예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두 대학교를 목표로 입시 준비하기 때문에 경쟁률 또만 만만치 않다. 더구나 고등학교 3학년에 입시를 준비 했기에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다. 열이 학생은 이를 위해 학교가 끝나고 바로 상록묵향회를 찾아 이르면 새벽 1시에서 늦으면 3시까지 글을 썼다. 또 글 연습을 마치면 채운동(당진 이교다리 앞)에서 집인 원당동(부경아파트)까지 걸어 다녔다. 걱정할 김용남 원장에게는 “부모님이 데리러 온다”고 하고 부모님에게는 “택시 타고 왔다”고 말하며 늦은 새벽을 그렇게 오갔다.
“그 땐 무서운 것도 힘든 것도 몰랐어요. 서예에만 빠져있었거든요. 그냥 집만 보고 걸어 다녔던 것 같아요. 요즘에야 좀 겁이 생겼네요.”

외로운 직업이라는 ‘서예’
아주 예전 서예를 시작할 무렵 누군가가 열이 학생에게 “서예는 외로운 직업인데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건넸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새벽까지 글을 쓰면서 문득 외로움이 열이 학생에게 찾아왔다. 친구들과 야간자율학습실을 몰래 빠져 나와 맛있는 것도 사먹고 봉지 라면도 끓여 먹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또 서예를 희망하는 학생도 당진에는 전무하기에 혼자서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럴 때면 김용남 원장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 회원들이 곁에서 응원을 했고 그 힘으로 열이 학생은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뒤 돌면 서있던 부모님 그리고 원장님
흔히 서예라고 하면 글을 쓰는 것이기에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붓부터 시작해 화선지 그리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경비까지 열이 학생이 감당하기엔 힘들었다. 그럴 때 마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열이 학생의 부모님은 항상 열이 학생 혼자 대회를 보냈다. 하지만 서운함도 잠시, 집중해서 글을 쓰다 뒤를 돌아보면 항상 어머니가 계셨다. 또 부모님 못지않게 열이 학생 옆엔 김용남 원장이 자리했다. 열이 학생은 “원장님이 친 딸처럼 챙겨 주셨다”며 “대학에 입학해 원장님 품을 떠날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쉽다”고 말했다.

“느낌 있는 현대서예 하고 파”
열이 학생은 글을 쓰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각이 많을 때 생각 없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서예의 매력이라 말한다. 열이 학생은 “아주 가끔 붓을 잡으면 짜릿한 느낌이 온다”며 “그럴 때면 글이 정말 잘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예란 길은 평범하지 않다. 그럼에도 열이 학생은 “평범하지 않은 진로이기에 기대하시는 분들에게 자랑스럽고, 이 길을 걸으려는 친구들에게는 본보기가 되도록 성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현대서예를 하고 싶어요. 서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서예를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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