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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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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진에 이어 기념탑 헌화 분향

꽃샘추위가 찾아온 지난 10일,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면천초등학교 교정과 면천면 시가지 일대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퍼지고 태극기가 휘날렸다. 지역 곳곳에서 온 초등학교 학생들은 ‘독립만세’, ‘애국애족’을 적은 띠를 이마에 두르고 진지하게 재현에 임했다.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도포 자락과 교복을 휘날리며 추위를 떨쳐가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이길조)에서 주관한 제8회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이 지난 10일 면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앞서 면천농협주부풍물단(단장 박창애)이 재현식을 축하했으며 기념식에서는 3.10만세 장학금 수여와 3.10학생만세운동 약사 및 재현행사 경과보고가 이어졌다.
또한 학생 대표가 나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으며 면천중학교 학생들과 원당중학교 이한복 교감이 3.10학생독립운동 노래 제창을 이끌고 면천초등학교 류순이 교장의 만세 삼창이 진행됐다.

또한 면천초를 시작으로 면사무소와 정류소를 거치며 만세운동재현 행진이 이어졌다. 정류소에서는 일제의 탄압 모습이 재현됐으며 이어 독립만세운동의 열기가 뜨겁게 오르며 면천주유소 사거리, 농협주유소 사거리, 시장길을 지나 기념공원에 도착했다. 기념공원에서는 헌화를 분향하며 이날 재현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길조 기념사업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면천은 충남도 내에서 가장 먼저 학생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며 이 운동이야말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운동을 펼쳤던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애국애족 운동”이라며 “재현행사를 통해 3.1운동 정신을 되살려 우리 역사를 알리는 한편, 우리 모두가 하나돼 고향을 사랑하고 내 고장을 자랑스럽게 가꿔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고장의 역사적 긍지와 자존심 고취는 물론 지역화합과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애국애족 운동으로 승화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면천초 4학년 학생들

“독립만세 운동, 굉장하고 대단해”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에 참가한 면천초 4학년 학생들은 연신 “굉장하다”고 말했다. 시선미 학생은 “당시 독립운동을 한 학생들도 4학년이라고 들었다”며 “어린 나이임에도 만세운동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독립만세운동에 나섰다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이 너무 나쁘고 미워요. 만약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저는 싸움을 멈추는 데 앞장설 거예요.”
또한 오태수 학생은 “만세운동이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진행됐다는 소리를 듣고 뿌듯하기도 하고 굉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10학생만세운동이란

면천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원용은은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에서 남녀 학생들이 선두가 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벅찬 가슴을 안고 귀향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다짐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용은은 동급생 박창신과 상의해 4학년 급장 이종원과 은밀하게 계획을 꾸렸다. 전교생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논의하고 제반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들은 일본국경일인 3월 10일, 오후 수업이 없다는 것을 예견하고 4시에 만세운동을 치르기로 정했다. 3월 10일 오후 4시경 동문 밖 저수지를 지나 산 너머 으슥한 골짜기에서 전교생이 집합했고 독립만세운동을 대서 특필한 10척의 장폭 현수막과 태극기를 길게 달고 앞장서 나갔다.

학생들이 행진하던 가운데 덕산보통학교 심상열 선생님을 마주쳤고 심 선생은 손을 번쩍들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학생들은 이를 보고 용기를 얻어 펄펄뛰며 면천공립보통학교 정문 앞에까지 당도했다. 선생님들은 깜짝놀라 저지하려 했으나 이를 막지 못했고 면천주재소(현 파출소) 앞을 통과하려 할 때 경찰이 출동해 강력히 저지하는 바람에 해산당하고 말았다. 이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려고 웅성웅성하던 가운데 선생님들이 총 맞지 말고 어서 도망가라고 호통 치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후 공주 헌병대에서 16살의 원용은과 18살의 박창신을 주모자로 색출해 공주 형무소로 이감됐으며, 4개월간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이후 원용은과 박창신은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여 졸업하지 못했다.
이 사실은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 선생이 1977년에 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으로 공주형무소에서 찾아낸 형사기록부가 증명하고 있다.

※출처 :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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