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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15.04.10 20:46
  • 수정 2017.08.12 01:09
  • 호수 1054

하완철 우리식품 대표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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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전통시장 내 우리식품을 1994년부터 21년간 운영하고 있는 하 대표는 고대면 성산리 출신으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농업후계자 및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했다.
  하 대표는 앨범에서 사진을 한장 한장 꺼내며 옛 기억을 되짚었다. 하 대표는 “농업에 종사한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을 당시와 젊었을 때 꿈 많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첫 번째 사진은 26세 때 집 앞 텃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고향인 고대면 성산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었다.
오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친구다. 내 친구는 당시 인천에 있는 패션업계에서 일을 했었는데 나를 보러 당진으로 놀러왔다. 현재 이 친구는 유명한 패션업계 사장이 됐다.

 


두 번째 사진은 1981년도 나와 내 아내의 결혼식 때의 모습이다. 당시 당진엔 신혼예식장 밖에 없었다. 이 때 예식이 끝나면 동네잔치를 2~3일 동안 벌이곤 했다.

 

세 번째 사진은 나와 가족들이다. 나와 아내는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들을 원해 계속 아이를 낳다보니 4명까지 낳았다. 아이들이 많아 키울 땐 형편이 어려웠다. 큰 고무대야에 아들을 앉혀 놓고 장사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힘든 시절이었지만 다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보람 있다. 어느새 금쪽같은 손자도 생겼다.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네 번째 사진은 2010년에 한국 BBS 당진지부에서 함께 칠갑산으로 가을 산행을 갔을 때의 모습이다. 내가 BBS에서 활동한 지는 15년이 됐다. 가정형편이 힘들었지만 BBS에서 만난 결손 아이들 3명을 내 자식처럼 생각해 이 아이들에게 일이 생겼다 하면 바로 달려갔다. 고맙게도 가족들도 나를 이해 해줬다. 내가 돕던 3명의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은 아직도 나와 연락하며 지낸다.

 

 

다섯 번째 사진은 2011년에 지리산 피아골로 1박 2일 동안 역내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산을 왕복하는데 무려 8시간이 걸렸다. 건강을 위해 산악회를 시작했건만 너무 힘들었다. 힘든 와중에도 경치가 멋있어서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내가 등산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소리에 시작했는데 허리 뿐 아니라 혈압도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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