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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복한 우리 가족 ‘家和萬事成’
고대면 진관리 故 손낙성 옹의 자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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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만난 4대 가족
선친 떠올리며 감사 새겨

오랜만에 장성한 조카가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고모가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멀리서 달려오며 조카의 손을 잡았다. “아유~ 얼마만이니. 너무 반갑다 얘.” 한 번 잡은 손을 꼭 부여잡고 혹여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근심은 없는지 재차 물었다. 그 때 고모가 말했다. “근데 네가 이름이 뭐였더라?” 가족이 많아 이름 외우기 쉽지 않다며 깔깔 웃는다. 이름표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단다. 그래도 어색함 없이 이날 모인 고대면 손 씨네 가족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10년 만에 한자리 모인 가족

지난달 30일 고대면 진관리에 위치한 본가에서 손 씨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故 손낙성 옹의 자녀와 그의 자녀, 또 그들의 자녀까지 자리했다. 근 10여 년 만이다. 그 전에는 60여 명의 대 가족이 서울 등 도심지에서 가족모임을 가져왔지만 다들 바쁜 일상으로 인해 모임이 끊겼다. 하지만 이번에 故 손낙성 옹의 증손주가 나서 가족모임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모임을 성사시켰다. 그 덕에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난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고 덕담을 나누며 반가운 얼굴로 마주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이날 가족들은 먼저 떠난 故 손낙성 옹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故 손낙성 옹은 고대면 진관리 출신으로 석문국민학교 1회 졸업생이다. 열다섯에 석문면 삼화리 출신인 아내 故 인구성 씨와 연을 맺고 2남 6녀(희동·혜동·영순·영숙·흥동·문자·문수·관동)를 슬하에 두었다. 자손들에 따르면 故 손낙성 옹은 항상 ‘교육’을 중시 여겼다. 그는 집 사랑방을 내어 야학방을 개설했고 또 현 고산초등학교의 전신인 고성학술강습소와 호서고등학교의 전신인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더불어 고대초등학교가 개교한 뒤 60년대까지 육성회 임원으로써 활동하며 교육에 힘 써왔다.

이후 6.25 전쟁 때 고대면민족청년단장으로 활동해 옥고에 갇히기도 했으며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고대면의회 의원과 의장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했다. 이밖에도 당진군 원예조합을 창립해 농업의 발전을 꾀함은 물론 바이올린과 축음기 등을 농촌인 고대면으로 들여오는 등 문화에 한 발 앞서 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1990년 12월 3일, 81세로 생애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교육 강조한 할아버지

생전 교육을 강조했던 그는 자녀, 증손자 들이 자고 있을 새벽이면 어김없이 깨워 공부를 시켰을 정도로 교육을 강조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녀들을 가르쳤다. 그 덕인지 손 씨네 가족에는 교사, 교수 등 교직자가 22명, 의사와 약사 등 의료계통 종사자가 1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그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후세까지 그 뜻이 이어졌다.

사위 최재성 씨는 “아버님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방에 야학을 꾸미고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며 “평소 먼발치에서도 아버님을 존경했기에 아내보다도 아버님을 보고 이 집에 장가를 왔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의 아내 손영순 씨는 서운한 표정 없이 “맞다”며 “아버지는 우리 돈을 들여서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데려다 옷 입히고 밥 먹였을 정도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사람”이라며 웃었다.

“또 태어나도 할아버지 손자로”

故 손낙성 옹의 첫째 딸 故 손희동 씨의 아들 이종윤(전 보건복지부 차관) 씨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의 손자로 남겠다”고 말했다. 평소 교육을 강조하던 할아버지 뜻에 따라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무부, 경제부가 희망부서로 각광받던 당시, 그는 보건사회부를 희망했다. 그 뒤 탄탄대로를 걸어 차관까지 올랐단다. 그는 “이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며 “먼저 나서서 이런 모임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동생들이 이렇게 움직여 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꾸준히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가족 모임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떠난 아버지 이자 장인 그리고 할아버지인 故 손낙성 옹을 떠올리며 순간 엄숙해지기도 하고 다시 웃음으로 가득해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모두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이날 만큼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옛 추억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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