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흔 살 할아버지의 세상사는 이야기
오칠영 할아버지와 아내 최춘선 할머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온 한평생
“아직 눈도 잘보이고 귀도 밝지”

흑백사진 속 앳된 청년은 어느새 주름 가득한 노인이 됐다. 마른 고목의 껍질처럼 투박하고 거칠어진 손에는 그의 인생이 담겼다. 90년, 강산이 아홉 번도 더 바뀌었을 시간. 먹고 살기에 바빴던 그 시절의 20대 청년에게나,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살아온 노인에게나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렀다.

순성면 봉소리에 살고 있는 오칠영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이다. 일제의 통치 아래 있었던 1926년 면천면 송학리에서 태어났다. 산골에 살던 소년은 19살이 되던 해에 일본 어느 섬으로 가서 비행장 활주로를 닦는 일을 했다. 당시에 일본인들과는 한 배에 탈 수도 없었다. 한국인들은 짐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하루 종일 일을 했지만 먹을 게 없어 감자와 고구마로 연명했다. 굶어 죽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혹독한 날들이 이어졌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짐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부산항에 도착했다.
지난 90년간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일본에 끌려갔던 그 시절을 끄집어냈다. 아주 먼 그날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일이다.

“여전히 1등 신랑”
가난과 빈곤은 6.25 전쟁 이후까지 이어졌다. 그 역시 다른 이의 땅에서 논을 갈고 밭을 일구며 살았다. 성실하게 살던 그의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중매를 섰다. 그렇게 아내 최춘선(82)을 만나 26살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슬하에 진숙·정란·금난·경주·동원·동주 6남매를 뒀다.
19살 앳된 색시였던 최춘선 할머니도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겼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날들만 해도 벌써 65년이다. 구불구불 쉽지 않은 인생길을 걸으며 산전수전을 함께 겪었다.

최춘선 할머니에게 남편 오칠영 옹은 여전히 “1등 신랑”이다. 일평생 아내 속을 썩여본 적이 없단다. 늘 변함없이 성실하고 부지런한 남편이란다. 특히 할머니는 어려웠던 시절, 할아버지가 일을 하면서 얻은 주먹밥을 다 먹지 않고 신문지에 싸온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일터에서 준 주먹밥을 나 굶고 있을까봐 반을 남겨 가져온 거야. 그게 왜 지금까지도 생각나는지….”
50년이 넘도록 할머니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건 반쪽짜리 주먹밥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이었다.

30년 함께한 경운기
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오칠영 할아버지는 여전히 정정하다.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이 몸이 예전 같진 않지만 아직 눈도 잘 보이고, 귀도 밝고, 밥도 잘 먹는다. 게다가 할머니가 마실 나가면, 작은 구멍가게를 혼자 볼 수 있을 만큼 셈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농사일도 거뜬히 해내며 경운기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자녀들과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얼마 전 경운기와 오토바이를 팔았다.
“오토바이는 작년에 없앴고, 경운기는 며칠 전에 팔았지. 이제는 위험해서 타면 안 될 것 같더라고.”
불과 얼마 전까지 경운기를 타고 농사일을 지었는데,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젠 나이가 먹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30년 동안 경운기 참 잘 부렸다”는 말로 서운함을 대신했다.  

“6남매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옛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첩을 뒤적이던 그에게 손녀·손자 이야기를 꺼내니 주름진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잘 커준 자식들은 물론이고 손주들을 생각만 해도 기쁘단다.
며칠 전엔 오칠영 옹의 구순 생신을 앞두고 3대가 무창포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나이 아흔에 손주들과 함께한 게임이 그렇게 즐거웠다고.
“여생에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그동안 아내가 너무 많이 고생했어.”

끝내 고맙다, 미안하단 말을 하진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입가에 그 말이 맴돌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아내는 잘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그저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한다는 게 두 노부부의 마지막 소망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