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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마비에서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
이명희 중증장애인자립센터 회장의 칠전팔기 인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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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핀다

전신마비부터 암까지…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
소외된 장애인들, 사회에서 함께하고파

인생 바꾼 단 한순간의 사고
1983년 오전 11시 30분. 후진하던 차량이 그를 덮쳤다. 그의 나이 불과 32세였다. 병실에 누워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의사는 평생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해도 난 일어날 수 있어’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몸은 마음과 달랐다. 이를 악물고 굳은 다리를 애써 뻗으면 다시 그 상태로 굳을 정도였다. 집에 평행봉을 설치해 매일 같이 걷고 또 걸었다. 이 회장은 “가만히 있다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며 “그때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 노력 끝에 현재 왼쪽 손과 오른쪽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면 일상적인 거동이 가능한 상태다.

사고 후 찾아온 '암’
하지만 삶은 무심했다. 모진 재활훈련으로 인해 면역력과 체력이 바닥났다. 몸에 단백질이 부족해 머리카락이 빳빳할 정도였다. 거기에 스트레스까지 더해 사고 6년 후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보다는 가족 걱정이 앞섰다. 완전히 따뜻한 봄날의 날씨에도 오한이 찾아와 두터운 겨울옷을 입어야 했고 지금도 뼈가 뒤틀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사고 후유증에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았단다. 그는 마음에 쌓인 모든 것을 비워냈다.

남편을 떠나보내다
그에게 갑작스런 사고가 찾아왔듯이 그의 가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건강했던 남편에게 아내의 사고 이후 충격으로 급성 당뇨가 찾아온 것이다. 이후 남편은 두 차례의 뇌경색으로 뇌 손상을 크게 입었고 말도 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7년을 이 회장이 꼬박 남편 곁을 지켰다. 그 또한 몸이 성치 않았다. 간호를 하면서도 “이 사람보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그 후 그의 나이 58세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사고 이후 그의 삶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이 뒤바뀐 것이다.

동료 위해 나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신평면 집을 찾았다. 수년간 비워진 집은 냉랭하기만 했다. 추억이 담긴 사진은 엉겨 붙은 채 알아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 없었고 우연히 접속했던 당진시청 홈페이지에 장애인 동료상담사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바로 접수했다. 그는 “이력서를 준비하는 동안 정말 신이 났다”며 “누구보다도 장애를 이해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12월 면접을 보러가는 날 유독 눈이 많이 왔다. 신평면 신당리에서 택시를 타고 면접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면접관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겨우 면접관을 찾아 들은 말은 “상담사를 뽑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장애를 가진 그에게 세상은 냉담하기만 했다. 이후 당진시지체장애인협회에서 한 달 56시간 근무하는 동료상담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동료상담사라는 말조차 낯설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하루에 5~60건 씩 장애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전화통화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갔다. 처음으로 수화기가 아닌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한선 씨(본지 제967호 김용일 父)다. 이 회장은 장애로 인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김 씨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했고 현재 김 씨는 당진시장애인복지관 수채화반 ‘담쟁이’를 통해 월등한 미술적 재능을 보이고 있다.

중증장애인 자립지원센터로 거듭나
하지만 여전히 ‘장애’라는 이유로 사회와 고립된 이들이 많다. 이 회장은 그들을 위해 강종수 사무국장과 함께 2012년 비영리단체인 꽃다지중증장애인모임을 만들고 자조모임, 또래상담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더 나아가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울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신터미널 앞 로뎀타워로 이전했다. 개소식은 차후 진행할 예정이다.

“종종 저 때문에 용기와 희망을 찾고 살아갈 맛이 난다는 말을 들어요. 저는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주저앉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라고요. 그들이 세상밖으로 나와 자립하는 것이 제가 바라는 전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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