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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손에 붓을 쥐고 삶을 다시 쓰다
파킨슨 병 딛고 일어선 권오봉 씨(신평면 거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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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전소된 집…벼루 안고 눈물
“곁에 있어준 아내 고마워”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권오봉(69·신평면 거산리) 씨가 위태로워 보이는 걸음으로 자전거로 향하더니 이내 안장에 오른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 때문에 자전거 페달은 고사하고 손잡이 조차 잡기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내 힘차게 페달을 돌린다. 그의 인생도 그랬다.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암담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고 새롭게 써 내려간 길을 당당히 마주했다.

“형님, 걸음걸이가 이상한데요?”

어느 순간 문득 손에 마비가 찾아와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 걷는 데 발이 끌리더니 점차 횟수가 한 번에서 두 번으로, 그러다 네 번으로 잦아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앞서 걸어가는 그를 보고 지인이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병원으로 향한 그는 그렇게 20여년 전 나이 48세에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았다.
한편, 파킨슨 병이란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손 떨림과 근육 경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 자신의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아 권 씨 또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유복한 생활에서 빚더미까지

송악읍 광명리 출신인 오 씨는 유복한 집안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지초와 송악중을 거쳐 예산농고를 졸업하는 동안 또래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랐다. 이후 제약회사와 농협 등에서 근무하며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위기는 한 순간에 찾아왔다. 직장을 그만 두고 지인과 함께 창호 공장을 운영하던 중 대표이사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고, 스스로 이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다. 이후 거래업체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총괄이사였던 그에게까지 압박이 들어와 결국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당진자동차운전면허학원을 운영했으나 이전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파킨슨 병이 찾아왔다.

붓을 잡은 떨리는 손

그러나 권 씨는 주저앉지 않았다. 파킨슨 병 진단을 받을 당시만 해도 눈앞이 암담했지만 이내 그는 “내 앞에 안 될 일은 없다”며 새로운 삶을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붓을 잡았다. 이미 신체의 오른쪽에 마비 증상이 찾아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남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공을 쏟아 부으며 붓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갔다.
파킨슨 병이 신경퇴행성 질환인 만큼 병환은 차츰 속도를 높이며 진행됐다. 걷는 것조차 아슬아슬했고 위태로웠다. 한 번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기는 등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고 이번에는 자전거에 올랐다. 자전거를 탄다는 이야기에 주치의도 놀랐다. 이후 ‘생로병사의 비밀’ 등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일부러 사람들을 만났고 평소보다 노력했다”며 “그만큼 하니 안 되는 것이 없더라”고 말했다.

화재로 잃어버린 집

새벽 두시 반. 불편한 몸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기에 늦은 시간까지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문 틈 사이로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왔고 뒤돌아 문을 여니 이미 연기로 집 안이 가득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잠들고 있던 아내를 깨워 집 밖으로 탈출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집은 터만 남은 채 모두 불탔다. 불씨가 모두 꺼지고 그가 가장 먼저 손에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벼루’였다. 그는 “파킨슨 병을 앓은 이후로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 없었지만 그날 벼루를 집어드는 순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나의 고마운 아내, 김기자 씨

잇따른 부도와 사업 실패, 그리고 파킨슨 병으로 인해 모든 삶이 뒤바뀌었다. 그런 권 씨 옆에는 묵묵히 그를 지지해주고 응원한 아내 김기자 씨가 있었다. 권 씨와 김 씨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권 씨의 군대 동기에게 “나보고 고모부라고 불러라”며 농담을 던졌는데, 제대 이후 우연히 서산에 갔다가 그 군대 동기를 만났다. 그에게 사촌을 소개받으며 정말로 ‘당 고모부’가 됐단다. 그는 “아내는 나에게 걱정되는 말 하나 하지 않는다”며 “마음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불가능은 없다

그를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발걸음에 마음까지 초조해진다.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지, 자전거를 타다 큰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닐지, 붓을 써 내려가다 떨리는 손으로 실수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그는 하나씩 천천히 끝까지 이뤄낸다. 그의 인생도 그렇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순간들이 그에게 찾아왔지만 그는 “안 될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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