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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15.08.21 21:47
  • 수정 2017.08.12 01:05
  • 호수 1072

김동기 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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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웨이터 일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서울로 향하기도 했다. 주변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준비한 적도 있었다. 이 외에도 군고구마 장사도 해봤고 한 때는 다단계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처갓집이 있는 당진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결혼 후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옆에서 힘이 돼 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은 콩나물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험한 일을 많이 해본 지라 어떤 일이든 이겨나갈 수 있다.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보니 새롭다. 오래된 사진은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경남 마산에서 15년 전에 찍은 사진도 있더라.

첫 번째 사진은 둘째 영동이 돌 때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마음이는 원래 ‘바다샘마음’이었다. 바다처럼 넓고 샘처럼 깊은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둘째 영동이는 원래 ‘으뜸’이라는 이름으로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이름 모두 아버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로서 자식의 이름 하나 마음대로 지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두 번째 사진은 영동이가 태어난 지 5일 째 되던 날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예쁘게 나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두 아이 모두 활동적이고 영어와 수학 각각 100점, 95점을 맞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조금씩 커가면서 가족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하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지만, 내가 살아온 것처럼 아이들도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 번째 사진은 2013년 아산으로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일치기로 갔는데 바쁜 삶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즐긴다. 무계획으로 떠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숙박할 곳을 정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텔에서 잠을 잘 때가 많은데 아이들도 적응이 됐는지 모텔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네 번째 사진은 올해 콩나물국밥집 진해 용원점을 오픈하고 올라오면서 경남 함양군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둘만의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 때 1박2일로 여행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섯 번째 사진은 며칠 전 가게 앞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3900원짜리 국밥으로는 기름값도 못 건진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리다매 원칙을 가슴에 새기며 여덟 테이블의 작은 가게를 개업하게 됐다. 현재 8개의 점포를 냈으며, 내년까지 25개까지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여리고 부지런한 아내는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가 주방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항상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우리 가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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