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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로 사랑 전하는 권병호 씨(정미면 하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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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알 수 있지

시각장애인 위해 명절마다 쌀·한과 전달
빈 몸으로 귀향해 염솔한과 운영하기도

 

어김없이 추석이 돌아왔다. 푸짐한 보름달이 환히 떠올랐다. 하지만 휘영청 밝은 달빛조차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다. 그들을 위해 15여 년 간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염솔한과 전 대표 권병호(73·정미면 하성리) 씨는 올해도 한과와 쌀로 사랑을 전했다.

눈 앞이 캄캄했던 백내장

30년 전이였다. 지금보다 몸무게가 20kg는 더 나갔을 때란다. 하루가 지날수록 눈이 흐려지더라.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문득 또 앞이 흐려질 때가 반복됐다. 그는 ‘백내장’ 판정을 받았다. 당시 4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였다. 백내장이 점차 악화돼 한 쪽 눈이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했다. 눈 한 쪽이 안 보일 뿐인데 세상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길을 가다 넘어지는 것은 기본이며 물건을 주우려 해도 몇 번씩 허공을 더듬어야만 손에 잡을 수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다행히 이전처럼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15여 년 간 함께한 한과 나눔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또 같은 고향 출신으로 어렸을 때 가깝게 지내던 (사)충청남도 시각장애인연합회 당진시지회 김중환 전 회장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시각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김 회장을 볼 때면 참 안타까웠단다. 그는 “어렸을 때 마을 냇가에서 친구들이 물고기를 잡으면 앞을 못보는 김 회장은 물고기를 넣을 통이라도 들고 우리와 함께 하곤 했다”며 “어렸을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후 당진에 내려와 어느 정도의 기반을 잡은 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명절이면 쌀과 한과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며 어느덧 15여 년이 훌쩍 넘었다.

연극영화과에서 현실을 보다

한편 그는 정미면 하성리 태생이다. 정미국민학교를 나왔으며, 당시 정미면이 서산군에 소속돼 있을 때 서산중을 졸업했다. 이후 당진상업고를 나와 연기의 꿈을 꾸며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연기자의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무대 한 번 오르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결국 현실과 타협하며 서라벌예대를 중퇴했다.

30년 동대문 시장에서의 삶

다시 그가 향한 곳은 동대문 시장이었다. 포목상에 들어가 천을 떼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패션 업계에 발을 들였고 30여 년의 세월을 그 곳에서 보냈다. 당시 패션업계가 활기를 띌 무렵이어서 그는 전국 양장점을 상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며 이름난 패션 브랜드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결국 그 또한 동대문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한 푼도 없이 찾아온 고향

백내장 수술과 사업의 실패로 몸도 마음도 지친 채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고향이다. 형이 운영하던 염솔한과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내려온 고향이기에 처음엔 동문회 등 지인들이 있는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단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았고 하나 둘 마음을 열며 지금은 대한노인회 정미면분회 사무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적이 있었기에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염솔한과의 자리를 아들 권인중 대표에게 물려줬다. 그래도 늘 돌아오는 명절이면 시각장애인협회 소속 장애인들은 물론 서산의 시각장애인 단체에도 한과를 전하고 있다.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 권인중 대표 또한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단다.
권 씨는 “아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다 알고 있다”며 “후원 소득공제 명세서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또 이맘 때면 아내 이재동 씨 역시 바빠진다. 한과를 파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많다는 그의 말처럼 아내는 오토바이에 한과를 가득 싣고 마을 곳곳으로 전달하기 바쁘단다. 주는 기쁨은 한가위의 풍성함을 더한다.

시각장애인, 긍정적으로 살아갔으면

권 씨는 “시각장애인들이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한다”며 “아무리 내 앞에 어려운 여건들이 산처럼 가로막고 있어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살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으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에게 말을 전했다.
“내 입에 욕심 가득 한껏 음식 넣는 것보다 적당하게 음식을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리가 나와요. 너무 많이 먹으면 맛있는 것도 모르죠. 내 입에 있는 것을 빼서 상대에게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함께 배불러야 세상 사는 맛이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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