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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5.09.25 21:57
  • 호수 1077

“송익필 선생 재조명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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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구봉 송익필 선생 선양 학술대회

2015년도 구봉 송익필 선생 선양 학술대회가 <역경 속의 진유 구봉 송익필의 현대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지난 18일 열렸다. 당진문화원 문화공연장에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연구발표와 논평이 진행됐다.

이날 충남대 황의동 교수의 <역경 속의 진유, 구봉 송익필>이라는 제목의 발표로 시작해 충남대 김창경 교수, 숭실대 곽신환 교수, 충남대 황인덕 교수, 광주여대 임준성 교수, 대전대 정태희 교수가 차례대로 △구봉의 직 사상, 기호유학에서의 전승연구 △전설로 구현된 송구봉의 인물상과 그 의의 △구봉의 시세계-시화유와 노장 취향 중심 △구봉의 서예연구-삼현수간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에 홍웅표 내포문화원장, 한남대 류칠로 교수, 안양대 손흥철 교수, 혜전대 하재철 교수, 대전대 이성배 교수가 논평했다.

유종인 당진문화원장은 “지난 2011년 첫 번째 선양 학술대회를 개최해 구봉 선생의 문학적 공로와 업적에 대해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늦은감 있지만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구봉 선생의 문학적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며, 그동안 대두되지 않았던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돼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또한 충남대 황의동 교수는 발표를 통해 “구봉 선생은 학문적으로 새롭게 재평가 및 재조명이 돼야 한다”며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예학의 실질적인 선구자였다”고 말했다.
 

 

학술대회 연구발표

충남대학교 김창경 교수
직(直) 사상에 대한 전승의 내용이 공·맹·정·주의 사상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철학의 맥을 본받고 있다는 것과 문인제자들에게 직 사상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름이나 호 또는 자나 서재 이름을 짓는 등 서로에게 계승하고 있는 전승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호유학의 근대학자에게까지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김장생과 송시열의 독서체계가 구봉의 독서체계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볼 때 학문적 연원이 구봉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구봉의 직 사상이 조선 유학사에서 재조명 돼야 한다.

숭실대 곽신환 교수
태극문은 구봉 송익필의 대표적인 성리학적 저술이다. 송시열, 임영, 한원진, 심조, 이현익 등의 학자들이 각각 행한 변석을 살펴보면 태극문은 기호학파 안에서 율곡이 갖는 학문적 위상은 학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으로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현행 구봉집에서는 소옹에 대한 언급이 태극문 외에도 나와 있으나 율곡집에서는 박화숙과의 편지 등에서 매우 빈번하게 소옹을 언급하거나 응용하고 있다. 태극문이 율곡의 저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위적으로는 완벽성에 문제가 많은 이 저술이 율곡의 저술이어서는 안 되는 상황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충남대 황인덕 교수
전체적으로 구봉 전설은 일화적 전설과 허구적 전설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해왔다. 일화성 전설이 선행돼 지식층 중심으로 전승된 뒤, 허구성의 전설로 전승유형이 확장됐고, 이로써 설화로서의 상상과 표현이 확대·심화됐다. 구봉 전설은 위인의 영걸함, 도우간의 의리, 예법 중시 등 인물이 지닌 역량과 자품이 잘 구현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의 생애상의 특징이다. 비속한 신분, 그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나 탄압받는 실제적인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구봉이 그러한 현실 불만을 표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이 전설에선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로써 그가 삶에서 느꼈을 불만감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의식은 실제로 상당히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전설에서는 현실적 측면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것은 그가 겪은 생애상의 사실과 전설 유형이 일부 부합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전설에 나타난 구봉의 인물상은 임란에 대비하고 물리치는 영웅을 기대하고자 한 전승층의 욕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구봉의 인물상은 절박한 시대의식과 소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광주여대 임준성 교수
구봉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으로 이름 났다. 송익필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주로 시 부문에서 이뤄졌다. 역대 시화류에는 노장취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시화 편찬자가 유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 후기 유학을 제외한 다른 사상에 배타적인 경직된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의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품성과 문장력이 높았다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송익필의 노장 취향은 그의 신분적 상황과도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송익필은 노장적 사유를 통해 도학적 학문 세계에 더욱 침잠할 수 있었다”

대전대학교 정태희 교수
현재 남아있는 송익필의 글씨는 대부분 초서로, 삼현수간 역시 흐트러짐 없이 엄정웅일한 초서 간찰로 이루고 있는 것은 초서가 유독 성행하였던 명대의 서풍을 받아들이며 복고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16세기 조선 서예계의 분위기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글씨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게끔 썼는데 한국 서예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도학자 이전에 시인이자 서예가로서의 성정과 기질을 타고났다. 송익필의 초서는 경직된 필획이 없고 원세의 필치가 현저한 양상을 띠며 꼿꼿한 획법을 보이면서 체세는 연면 되고 휘감아 도는 듯 한 맛이 있다. 향후 송익필의 서예에 대한 고찰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년작이 나올 때만이 다양한 서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으며 보다 세밀한 연구가 지속돼 각 시기에 따른 변화 양상을 파악하고 송익필의 서예세계가 확실히 규명될 수 있는 후속작업은 추후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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