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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면 용두2리 결혼이주여성 둘라 씨와 안화식 부녀회장
낯선 한국에 친정엄마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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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남편과 홀시어머니 모시는 착한 딸”
농협 1:1맞춤영농교육 사업으로 인연

▲ (왼쪽부터) 시어머니 김순곤 씨, 남편 최영석 씨, 결혼이주여성 둘라 씨, 1:1 영농멘토 안화식 부녀회장, 고대농협 김응숙 상무

낯선 땅에 찾아온 이에게 친정엄마가 돼줬다. 얼굴도, 언어도,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가족이 됐다. 꼭 잡은 두 손에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동안 외롭고 쓸쓸했을 딸의 이야기에 엄마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 보이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 통하는 마음 하나로 그들은 가족이 됐다.

“배추도 키우고 식혜도 만들어요”

아들뿐이던 고대면 용두2리 안화식 부녀회장에게 지난해 딸이 생겼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둘라 크루스 아이자(27) 씨다. 필리핀 출신 둘라 씨는 6년 전 한국에 왔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남편 최영석(42) 씨는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하지만, 누구보다도 마음씨가 좋다.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 홀로 와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한국살이에 정착해 가고 있다.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장순미)의 도움으로 한국말을 배웠고, 고대농협(조합장 김명규)에서 실시하는 1:1맞춤영농교육 사업으로 ‘친정엄마’ 안화식 부녀회장을 만났다.

1:1맞춤영농교육 사업은 지역의 결혼이주여성과 지역민을 연계해, 한국인 멘토가 결혼이주여성 멘티에게 영농지도는 물론 한국에서의 삶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둘라 씨와 안화식 부녀회장의 사연이 얼마 전 농협중앙회장상을 받으며 알려지게 됐다.

안화식 부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째 둘라 씨와 그의 가정을 돕고 있다. 텃밭을 가꾸는 영농활동 지도부터 한국음식을 하는 법까지 둘라 씨가 한국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알려준다. 한 마을에 살다보니 집안 사정도 훤히 아는 데다 자주 만날 수 있어 둘라 씨에게 안 부녀회장은 든든한 친정엄마다.

한국과 필리핀의 서로 다른 자연환경 때문에 자라는 농산물이 달라  영농이 낯설지만, 안화식 부녀회장은 차근차근 농작물 기르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또 국과 찌개, 밑반찬 등 한국음식을 함께 만들면서, 이제 둘라 씨도 제법 한국음식을 잘한단다. 된장찌개와 계란말이처럼 간단한 음식은 물론이고 손이 많이 가는 식혜까지 할 줄 안다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시어머니 김순곤(81) 씨는 “며느리가 수줍음은 많지만 똑똑하고 착해서 뭐든지 잘 배운다”며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웠는데 말도 금방 배웠다”고 칭찬했다. 김 씨는 아들과 며느리를 닮은 손녀 지혜(5)와 손자 준원(3)이만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다.

“아들에게 장애가 있어 늘 걱정이 많았죠. 고향을 떠나 멀리까지 시집 온 며느리가 그저 고마워요. 게다가 손주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예뻐. 이제 내 강아지들 없으면 못살 것 같다니까.”

둘라 씨와 안화식 부녀회장은 얼마 전 사례발표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밤이 깊도록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 졌다. 이들과 함께한 고대농협 김응숙 상무도 “안 부녀회장이 정말 친딸처럼 대하고, 둘라 역시 그를 잘 따른다”며 “둘라가 우리나라에 와서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화식 부녀회장은 “아들이 없어 둘라가 정말 딸 같아 애틋하고 사랑스럽다”며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동네에서도 소문난 착한 남편, 인자한 시어머니를 만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둘라 씨는 이날 진심을 담은 사례발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사람이 되고 싶다”는 둘라 씨의 마지막 얘기에 안화식 부녀회장은 눈물을 글썽였다. 아마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엄마의 심정, 그리고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보내는 둘라 씨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 후 지난 6년 간 고향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둘라 씨를 위해 김응숙 상무는 농협중앙회에서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고향 보내주기’ 사업에 응모하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친정에 가는 건 둘라 씨에겐 꿈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화식 부녀회장은 농협에서 지원하는 1:1맞춤영농교육 사업이 끝나더라도 둘라 씨와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예정이다.

수줍음이 많아 말이 별로 없던 둘라 씨는 한국의 가족들과 안화식 부녀회장, 그리고 김응숙 상무에게 쑥쓰럽지만 용기를 내 진심어린 한마디를 건넸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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