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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16.01.01 10:10
  • 수정 2017.08.11 23:20
  • 호수 1090

류재일 석문농협 전무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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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면은 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다. 석문초등학교를 졸업해 석문농협 전무가 되기까지 석문면을 떠나지 않았다. 석문농협과의 인연은 농협 설립 초창기부터다. 지인의 권유에 스무 살 중반부터 잔심부름 일을 해 왔다.
지금까지 일하며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그때마다 꿋꿋이 참고 견뎠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일도 도맡아 하곤 했다. 늦은 시간은 물론 주말도 출근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가족에게는 미안함이 앞선다.

첫 번째 사진은 석문농협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달리기 대회 후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첫 번째가 나다. 내 왼쪽은 현재 송산농협의 고종섭 상무다. 그 다음이 고대농협에 있었던 박석선 전 상무다. 박 전 상무는 7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 많이 안타깝다. 그 옆은 지금은 퇴임한 김태환 전 당진농협 지점장이다. 우리는 달리기 대회가 있다면 언제나 출전했고 1등은 우리 것이었다. 무슨 종목이든 자신 있었을 정도로 빨랐다.

두 번째 사진은 중국 만리장성에서 아내(최월봉)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는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다. 나는 석문농협에서 설악산으로 야유회 가던 때였고, 아내는 친구들과 놀러가던 때였다. 아내는 예산 사람인데도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돼 지금까지 부부의 연을 맺고 있다. 우리는 2년 이상 연애했다. 하지만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 연애하면서 서너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장인어른이 우리 집을 찾아와 아버지와 함께 결혼을 추진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서로 강제 결혼이라며 농담하기도 한다.

세 번째 사진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석문초를 졸업한 우리들은 밝을 명(明)과 벗 우(友)를 따 명우회로 서로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씩 모임을 갖기도 하고 종종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함께 한다. 만나면 지난 추억과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린 서로 싸우거나 다툰 적이 없다. 그 점이 너무도 보람차다.

네 번째 사진은 바인더로 추수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당시에는 바인더로 추수했는데 콤바인이 도입된 이후 바인더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농협에서 근무하면서 농가 일도 많이 도왔다. 언제는 태풍으로 석문 지역에 배와 사과가 90%이상 낙과한 적이 있었다. 나와 직원들은 화물차량 5대에 떨어진 과일을 담아 과일즙 공장에 판매했다. 낙과를 줍느라 힘들었지만 조금이나마 농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다섯 번째 사진은 농협 임·직원 윷놀이 척사대회 당시의 모습이다. 70년대 초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서기 일을 할 때였다. 일이 힘들고 어려웠다. 하지만 척사대회로 모든 것을 날렸다. 임원과 직원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돼 윷놀이를 즐겼다. 나는 40년 가까이 석문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다. 첫 조합장부터 시작해 5명의 조합장과 함께 일했다. 다른 지점에서도 일 하고 싶었다. 근데 조합장들이 만류했다. 석문농협에는 내 모든 인생이 담겨 있다.
김남배 기자 rainingsky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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