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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이세돌 대국 보며 다시 깨달은 ‘겸손’
운명처럼 빠져든 바둑의 세계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격자무늬 나무판 위에서 펼쳐지는 검은돌과 흰돌의 ‘집짓기 싸움’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당진에서 기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재웅 6단을 만났다.

인생의 축소판 ‘바둑’
흔히 사람들은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는 대국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새겨야할 진리를 담고 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에 집착하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 공피고아(功彼顧我,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살펴야 한다),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거나 급하게 굴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이라는 말은 바둑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표현이다.

한국기원 당진지부장인 박재웅 6단이 정식으로 바둑을 시작한 지 어느덧 32년이 지났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29세의 나이에 비교적 늦게 바둑을 시작했지만, 처음 바둑을 접한 것은 16세 때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는 바둑을 두고 있던 사촌에게 물었다.
“바둑이 뭐야?”
사촌의 답은 간결했다. “둘러싸서 잡는 것.”

이 단순한 대답에 박재웅 6단은 운명처럼 바둑에 끌려 그 매력에 빠졌다.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할 정도로 바둑에만 푹 빠져버렸던 그는 하루 종일 바둑을 뒀다. 당시에는 바둑이 ‘잡기(雜技)’에 불과하다는 편견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는 바둑판을 도끼로 부수고 장작불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전국 다니며 바둑 배워”
집안 어른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재웅 6단은 당숙이 살고 있는 청주로 내려가 바둑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여행 겸 바둑을 배웠다. 당시에는 바둑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도 없었고, 바둑에 관한 책도 없었을 때라 그는 독학으로 바둑을 익혔다.

박재웅 6단이 30여 년 동안 바둑을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 때문이란다. 361개의 촘촘한 선으로 이뤄진 바둑판은 우주를 의미하고, 그 안에서 흑돌과 백돌로 무언가를 구사해 낸다는 것은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바둑판 안에서는 세대 차이도 없다.

나이든 노인과 젊은이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노라면 긴 말 없이도 서로 교감을 이룰 수 있다. 바둑을 두는 동안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집중력 향상에 좋고, 노인들에게는 치매 예방에 그만이다.  

박재웅 6단은 “바둑은 자신의 생각을 작은 바둑판 안에 펼쳐 보일 수 있다”면서 “더 나아가 바둑을 통해 인생의 교훈도 얻게 된다”며 마음을 가다듬고 심신을 수양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단다.

바둑기사 된 제자 보면 ‘뿌듯’
서울과 당진에서 30여 년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바둑을 지도해 온 그는 2년 전 만난 자폐증을 앓던 소년을 기억한다. 장애가 있었지만 무척 똑똑했던 그 소년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타인과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그가 오랜 시간 박재웅 6단과 바둑을 두며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바둑을 통해 소통하면서 이전보다 자폐증세가 나아지는 제자의 모습에 박 씨 또한 큰 보람을 느꼈다.

박재웅 6단에게는 자랑스러운 제자가 또 한 명 있다. 바로 바둑기사 박영롱 3단이다. TV나 신문을 통해 박영롱 3단의 소식을 접할 때면 흐뭇한 미소하 마음 한 가득 번진다. 박재웅 6단은 “16년 전 기원에서 박영롱 기사를 처음 만났다”며 “가르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맞바둑을 둘 정도로 실력이 타고 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아직도 간간히 찾아와 안부를 묻는 제자들을 보면 흐뭇하다”며 “바둑TV를 시청하다 이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나오면 무척 반갑고 뿌듯하다”고 전했다.

최근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박재웅 6단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이슈였다. 그는 향후 50년에서 100년까지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알파고 앞에 속수무책인 이세돌 9단을 보면서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상식과 절대가치로 알았던 진리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바둑과 함께 인생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 온 것 같다는 그는 “까불지 말고 살아야 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전했다. 이러한 깨달음조차 바둑을 통해 배운 겸손이다.

새롭게 불고 있는 바둑 열풍
박재웅 6단은 이번 이세돌-알파고 간의 대국이 그동안 침체됐던 바둑 열풍을 불러온 4번 째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바둑 열풍은 일본바둑계의 일인자가 된 조치훈 9단이 활동하던 시기였고, 두 번째는 바둑의 황제 또는 바둑 신동이라고 불렸던 조훈현 9단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때다. 그리고 세 번째는 조훈현 9단의 제자로, 스승이 누렸던 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이창호 9단이 활동하던 때다. 그렇게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2016년 다시 바둑 열풍이 불고 있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비록 졌지만 이긴 사람이 됐다. 이러한 기회로 사람들이 다시금 바둑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박재웅 6단도 내심 흐뭇하다. 한때 바둑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던 때에 비하면 디지털 시대인 요즘, 바둑계가 오랜 침체를 겪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둑은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 ‘학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한국기원 당진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박재웅 6단은 아직도 기원을 찾는 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는 “기원이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서 바둑을 통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바둑을 두면서 삶에 여유와 관심을 갖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영원히 바둑을 즐기고 싶습니다. 바둑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바둑에 관심 갖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바둑을 두러 기원을 찾아, 기원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게 제 바람입니다.”

 

<한국기원>
■연락처: 355-0648
■주소 및 위치: 당진중앙2로 196 (읍내동 25-23)
     조이앤시네마 맞은편
     구 건강보험공단 당진지사 건물 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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