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당 진입장벽과 공천 민주주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여야 정당 모두 한심한 추태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국정 대표자라기 보다는 소위 시정잡배만도 못한 언행이 난무했다. 민주주의 원칙이나 정책 이념은 고사하고 상식적으로는 이해 못할 촌극이 연이어 벌어졌다. 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조폭집단 수준의 정치체제로 퇴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정치가 한심한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정치적 ‘진입장벽’ 때문이다. 시장경제 용어인 진입장벽은 특정 산업이나 사업 분야에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진입장벽이 높으면 경쟁이 제한되어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고, 신상품 개발이나 기술혁신이 지체된다.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부분의 진입장벽은 허물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자연적이거나 불가피한 진입장벽들도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제조 산업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도 사업자는 많지 않다. 엄청난 자본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 진입장벽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남의 돈을 맡아 관리해 수익을 내는 은행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수완만 좋으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국가가 그 설립을 엄격히 제한한다. 은행이 난립해 금융 산업이 부실해질 경우, 국가적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한 진입장벽은 일부 직업분야에도 적용된다. 사람의 생명이나 권리를 다루는 의사와 변호사는 힘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면허시험을 치러야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진입장벽은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사업자나 직업인의 기득권 유지에 악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하다. 언뜻 보면 별로 높아 보이질 않는다. 최근 양당이 공천한 지역후보자들이나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정당공천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용케 넘어간 사람들이다.

민주국가에서 정당은 다양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수단으로 필수 불가결하지만, 특정인들이 권력을 독과점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현행 공천제도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우선 여든 야든 정당의 후보가 되어야 하는 과정, 즉 공천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인보다는 소속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남지역에선 야당후보가, 영남지역에선 여당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여야가 균점하고 있는 수도권이지만, 여당 선호지역인가 야당 선호지역인가에 따라 후보자 당락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이번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한 정치인들은 정당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들에게만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선거도 하지 않고(비례대표 공천후보자), 혹은 형식적인 선거만 치르고(소위 텃밭지역 공천후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대표자가 된다. 국회에 진출해서도 그들은 유권자를 두고 상대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없이, 자신에게 사다리를 제공한 선배정치인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선배정치인들은 이번 공천과정에서 후배정치인들에게 잘 보여주었다. 비록 국민들로부터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후배정치인들의 기강을 잡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작금의 공천파동은 누구에게 진입장벽을 넘어갈 사다리를 줄 것인가를 두고 기득권 정치인들이 드러내놓고 벌인 싸움이다. 국민들에게 추태를 보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경쟁정당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택권이 제한된 국민들은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국민주권 민주공화국이라지만, 소수의 정당권력자들이 주권을 찬탈한 국가로 전락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당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국민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천 민주주의’ 투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