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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세상사는 이야기 최성규 목공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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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성 난치병 ‘강직성 척추염’ 투병
서양화가 꿈꾸던 청년, 목공예 작가로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굳기 시작했다. 몸에 마비가 오면서 허리가 굽었고, 온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직도 병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성 난치병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랜 시간 바라온 미술가라는 꿈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편백나무를 이용해 생활가구를 만드는 최성규 작가는 그가 좋아하는 편백나무를 닮았다. 딱딱한 나무처럼 몸이 굳어 조금은 불편하지만, 최성규 작가의 손을 거친 나무는 책상으로, 의자로, 선반으로, 그렇게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편백의 은은한 향기와 나무만이 갖고 있는 따스함도 마찬가지다.

이종호 작가와의 인연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8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당진에 왔다. 송악읍 기지시리에 자리를 잡은 그의 가족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기지초등학교와 송악중을 거쳐 송악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당시 미술교사였던 이종호 작가(현 당진문화연대 회장)를 만났다. 스승과 제자로 맺은 인연은 3년 뒤 대학 선후배로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이종호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 강릉 관동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최성규 작가는 강원도 일대부터 전국 곳곳에 스케치 여행을 다니며 한창 미술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빠르게 진행된 병세로 손에서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세상 밖으로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몸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아프고 나면 다시 괜찮아지면서 아프다 괜찮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급격하게 나빠졌다. 몸이 서서히 굳기 시작하면서 그림에 집중하며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게 힘들어졌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4~5년 동안 붓을 놓고 집에만 있었다. 점점 굽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편견 어린 눈빛이 싫었다. 그렇게 집 안에 웅크려 숨어 있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무렵 편백나무를 만났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몸도 많이 아팠고, 그림도 그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편백나무로 생활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편백나무 가구는 칠(도장작업)을 하지 않는다. 나무 질감과 색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기는 작업 내내 저절로 ‘힐링’을 선물한다. 최 작가가 편백으로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을 정도다.

가구 작업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오래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그림 작업보다는 적당히 몸을 움직일 수 있어 그에게 잘 맞았다. 게다가 나무에 관심이 생기면서 하나 둘 배우고, 연구하다보니 편백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최성규 작가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만드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삶 자체가 문화다”

수공예 작업에 몸이 불편하다 보니 많은 수량의 가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읍내동에 문 연 아띠 아뜰리에의 작품 전시 선반 등도 그가 제작했다. 그리고 한켠에는 자신이 만든 나무만년필을 비롯한 다양한 목공예 작품을 전시, 판매하며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흔히 생각하는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문화”라며 목공예가 가진 매력을 설명했다.

이종호 작가와의 인연으로 목공예 뿐만 아니라 당진문화연대 총무로도 활동하는 최성규 작가는 세상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일이 재미있단다. 앞으로도 당진문화연대, 아띠 아뜰리에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그는 “수공예 시장이 아직은 많이 어렵지만 문화·예술로 당진 주민과 원도심 상인, 그리고 문화예술인이 함께 공존할 수 있길 바란다”며 “시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직 강직성 척추염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어요. 다행히 10년 전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약이 개발됐지만 저에게는 조금 늦은 편이었죠. 저와 같이 희귀성 난치병을 겪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오래 걷지 못하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은 있지만 평소 생활에 크게 문제는 없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회 속에서 함께 자신의 영역을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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