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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아픔을 보다
당진의 문화숲길을 찾아서3 내포천주교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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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
전교·포교·순교·부활의 성지길이 담겨있어



한국의 베들레헴

소나무가 산을 이루고 있다는 뜻인 솔뫼성지는 당진 9경 중 하나다. 솔뫼성지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저절로 사색에 잠길 정도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곳으로, 증조할아버지 김진후부터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아버지 김제준, 아들 김대건 신부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았다. 1784년 김대건 신부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이존창의 권유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로써 솔뫼는 내포신앙의 못자리가 됐으며 신앙의 삶과 지표가 싹튼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신자들은 솔뫼성지를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뒤로 전국의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건립 126년 째, 천주교의 산 증인
 
합덕 시내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작은 길이 나 있다. 이 길이 합덕성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넘실거리는 노란 유채꽃 밭을 지나면 합덕성당이 보인다.

꽃내음 덕분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도 힘든줄을 모른다. 합덕성당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난해가 설립 125주년을 맞은 성당은 1929년에 지언 건물로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한,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의 역할을 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 합덕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합덕성당 뒤뜰에는 성직자들의 묘지가 있다. 1990년 천주교 자료에 따르면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 5명이 배출된 곳이라고 쓰여 있다.

고스란히 담긴 천주교 신앙

신리성지는 성지로서 늦게 알려진 곳이다. 신리성지는 타 성지와 달리 순교를 당한 곳이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의 일상이 담긴 곳이다. 이곳은 평범함 일상 속에서 오직 천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시골마을이었다. 신리성지의 경우는 농사지으며 살았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걷기에 좋다.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고개

신리성지를 빠져 나와 34km 정도 오랜시간 걸어야지 한티고개에 도착한다. 한티고개까지 가는 중에 배나드리 성지를 볼 수 있다. 배나드리 성지는 홍수가 나면 사면이 물바다가 돼 배를 타고 건너 다녀 ‘배나드리’라고 불렸다. 물이 불어나면 배를 타야 드나들 수 있어 신앙을 지키기에 적당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성지를 지나 8km 걸으면 한티고개가 나온다.  이곳은 예산, 홍성, 아산 등 내포 지역 신자들이 해미읍성으로 압송당할 때 넘던 고개다. 신자들은 한티고개를 넘으면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거친 곳

해미는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지방 가운데 유일한 군사 요충지다. 이곳은 1790년대부터 백년동안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해미의 경우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1868년 무진박해 때는 신자들을 생매장하기도 했다고.
김병빈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장은 “내포천주교순례길의 경우 전교, 포교, 순교, 부활의 성지길이 모두 담겨있는 길”이라며 “내포문화숲길이 조성된 4개의 테마 중 가장 사실적인 역사가 담긴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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