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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로 현장르포 1 구룡동
조용한 마을에 암환자 20여 명…10년 새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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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 전기 흐르는 소리 무섭다”
“역학조사·주민 건강검진 실시해야”

▲ 구룡동 주민 이근천 씨 집 바로 뒤에 고압송전탑이 위치해 있다.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얽힌 송전선로. 그 아래 주민들이 산다. 고압의 송전철탑 아래 사람이 살고 있다. 당진지역에는 현재 △765kV 2개 노선에 80기 △345kV 5개 노선에 214기 △154kV 8개 선로에 232기의 철탑이 세워져 있어 총 연장 189km에 526기의 고압철탑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쉴 새 없이 고압의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로 뒤엔 화력발전소가 있다. 당진화력발전소를 포함해 4개의 발전사에서 641만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앞으로 2개 발전사에서 410만kw의 전기를 추가로 생산할 예정이다. 또한 가동 중인 변전소는 5개, 건설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변전소는 3곳으로, 21만6000여㎡ 규모다.

이미 수년 전부터 주민들은 화력발전소와 송전선로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신체적인 건강에 대해서도 우려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민건강과 송전선로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는 게 정부와 한전, 그리고 발전회사의 입장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에서 집중적인 암 발생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송전선로와 화력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저 아랫집, 그 옆집, 길 건너 두 집…아이고, 스무 명이 훨씬 넘네. 한 둘이 아니구먼.”
당진2동에 속한 구룡동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은 자신들의 고향이 ‘청정지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면천면·정미면과 경계가 맞닿아 있는 구룡동은 이배산과 몽산이 마을을 안고 있는데다, 큰 공장이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특별한 오염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사이에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목숨을 잃은 주민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평생 구룡동에 살아온 양낙성 통장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나가는지 궁금했다.

양 통장은 자신이 들고 다니는 수첩에 이름을 하나 둘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나이도 함께 기록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은 3명에 불과했다. 50~60대가 대부분이다. 고령의 노인이 많은 마을에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

폐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혈액암 등 암 종류도 여러 가지다. 현재 양 통장의 수첩에 적힌 사람만 22명. 이 중 13명이 죽었고, 현재 9명이 투병 중이다. 그러나 주민들을 만나면서 얘길 나누다 보니, 수첩에 적어야 할 이름이 늘었다.

양낙성 통장은 “한 마을에서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암 환자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거대한 송전선로를 올려다봤다.

“징역 살더라도 줄칼로 끊어버릴까”
765kV 송전탑과 불과 3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양영세(63) 씨는 지난 2008년 위암 발병 사실을 처음 알았다. 벌써 8년째다. 지금은 암세포가 대장과 간, 폐까지 전이된 상태로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몸은 앙상하게 말라버렸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궂은 날이면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엄청 나요. 윙윙거리기도 하고 따닥따닥 체인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에요.”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노모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양 씨와 처마를 맞대고 있는 이웃집 역시 암환자다. 그리고 2차선 도로 건너에 살고 있는 한순예(79) 씨도 마찬가지다. 한 씨는 지난해 10월 대장암을 발견했다. 쓸개도 뗀 상태다. 시집온 뒤 50년 넘게 이곳에 살았다. 평소 아팠던 적을 손에 꼽을 만큼 건강했던 그에게 갑자기 시련이 들이닥쳤다. 한 씨는 “송전선로가 건강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 봤지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로 옆집인 이근천(69) 씨의 집은 송전탑 바로 아래다. 그 역시 폐암으로 지난해 말 수술을 받았다. 기침이 끊이질 않아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으나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암 판정을 받았다. 이 씨의 아내 양옥선 씨는 “집안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은 없었다”며 “송전선로에서 소리가 나거나 천둥·번개라도 치면 정말 무섭다”고 말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사는 여름철엔 불안도 한층 더 커진다.

“내가 징역을 가면 갔지, 어느 날엔 줄칼로 저걸 싹 잘라버려야 하나 싶다니까. 동네 땅값도 다 죽고, 좋을 게 하나도 없어. 피해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여.”

온 마을이 송전선로 아래
이밖에 부부가 암에 걸린 집도 있고, 병원비로 재산을 다 탕진한 사람도 있다. 구룡동은 서산IC와 면천IC가 가까이 있어 지리적 이점이 많지만, 철탑 때문에 땅도 잘 매매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집이 한 둘이 아니다. 130여 가구, 250여 명이 살고 있는 구룡동은 정미면 사관리변전소를 지나는 765kV와 345kV 송전선로가 겹쳐 지나고 있다.

마을 전체가 송전선로 2km 이내에 속해 모든 주민들이 법적 대상이 된다. 정부에서 전기세를 감면해주는 등 나름대로 보상하고 있지만, 불합리한 부분도 많다. 노인요양시설인 평안마을은 시설의 경우엔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금전적인 지원이 문제가 아니다. 건강에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다 보니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양낙성 통장은 “충남도와 당진시에서도 역학조사를 해서 규명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전기세 감면 등 금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의료기관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해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실시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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