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거미줄 송전선로 죽어가는 사람들
송전선로 현장르포 2 정미면 사관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전소 마을에 위치·송전탑 최대 밀집 지역
“가축 기형새끼 낳거나 유산해 폐업”
고향 떠나려 해도 땅 매매 안 돼 이주비용 없어

“일가족이 3대에 걸쳐 암과 난치병으로 죽거나 투병 중이에요. 손주가 혈액을 투석하다 죽은 지 2개월 만에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도 지금 폐암으로 간신히 살고 있어요. 며느리는 갑자기 쓰러진 뒤에 먼저 세상을 떴고….”

정미면 사관리. 주민이 18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죽은 사람이 무려 30명에 달한다. 6명 중에 1명 꼴이다. 특히 765kV의 송전탑 반경 180m 거리에 20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 중 5명이 암에 걸렸다. 변전소와 송전선로 건설 이후에 암에 걸리신 분이 있냐는 질문에 수를 세던 주민들의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사관리 주민들은 “더 이상 마을에서 못 살겠다”고 말한다.

“마을을 다 망쳐버렸어. 거미줄처럼 얽힌 저것을 쳐다보면 아주 정신이 없어. 살 수가 없다니까.”

TV·냉장고 가전제품 고장 잦아

1997년 사관리에 신당진변전소가 들어섰다. 765kV와 345kV가 어지럽게 얽혀 지난다. 당진지역에 꽂인 526기의 철탑 중 106개기(20%)가 정미면에 있다. 그중에서도 사관리는 변전소가 위치해 있는 덕에 가장 많은 철탑이 지난다. 처음 변전소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반대도 했지만 국가가 하는 사업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기를 보내는 곳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주민들이 더욱 예상할 수 없었던 건 변전소와 송전탑이 들어선 이후 변화된 마을의 모습과 자신들의 일상이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은 날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기괴한 소음은 말할 것도 없고,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에 창문도 못 열고 산다. TV나 냉장고, 전화기 등 가전제품의 고장이 잦았다. 어떤 날엔 TV가 펑 소리를 내며 번쩍하더니 먹통이 돼버린 적도 있었다. 기르던 가축들은 새끼를 배지 못하거나 유산을 하거나, 기형을 낳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전제품과 가축들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각
사람들은 암은 물론이고 난청,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마을에 살던 한 부부는 결혼 뒤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아를 낳았다. 건강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의구심과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김미숙(52) 부녀회장은 “40대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다 안면마비로 고생했다”며 “20대인 딸은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난청으로 매달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딸 아이가 아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을 때, 의사는 “혹시 주변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소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송전선로에서 나는 소음 때문은 아닐까.’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나이를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다. 철탑 바로 아래에 살고 있는 한금(89) 할머니는 자녀들이나 지인들이 집에 오면 “여기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을 한다. 한 할머니는 “날씨가 궂은 날 송전선로에서 소리가 나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며 “저것(송전철탑)만 보면 다 뜯어 내버리고 싶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변전소 공사 도대체 왜?
재산권 피해도 만만치 않다. ‘선비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마을 이름처럼 살기 좋은 마을이었던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토지가 매매되지 않는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것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맹규옥(82) 할머니는 “이젠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려 해도 변전소와 철탑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한다”며 “자식들한테 땅 팔아서 돈이라도 줘야 할 텐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사관리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나고 싶어도, 땅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이주할 돈을 마련할 수 없어 떠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실제 충남연구원은 지난 2014년 송전선로가 깔린 당진시 일대의 지가 하락이 1137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더구나 변전소에서는 최근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한밤중에 “쾅”하는 발파소리가 들리면 잠자던 주민들은 화들짝 놀라 그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원섭 개발위원장은 “공사 내용에 대해 주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며 “변전소를 방문하려 해도 ‘사업기밀’이라며 주민들을 오지도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 마을길을 오가는 대형 공사차량들로 주민들의 안전은 계속해서 위협당하고 있다.

이정순(68) 씨는 “마을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송전선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없는 이상 변전소와 송전탑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인들이 제발 힘 없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국회는 지난 2014년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을 만들었지만 법 공포 이전에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의 경우 주택매수청구 등의 보상에서 제외돼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