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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향인소식
  • 입력 2016.07.23 00:42
  • 수정 2016.07.23 13:24
  • 호수 1118

“진실 앞에선 양보란 없다”
출향인을 만나다 3 법무법인 세종 이두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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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간 검사생활 접고 로펌 세종에서 새 출발
“언제나 그리운 당진…고향 소식에 관심”

 

지난 24년 간 법조인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 왔다. 하지만 문득문득 고향 당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살았던 송악읍 영천리의 풍경과, 부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도왔던 고된 기억들은 이제는 추억이 됐다.

수사기록이나 인사기록을 살피다가도 ‘당진’ 이라는 글자를 발견하면 넘겼던 서류를 다시 되돌려보곤 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법무법인 세종에 몸담고 있는 이두식(55) 변호사는 아직 ‘변호사’라는 호칭이 조금 낯설다. 지난 24년 동안 검사로 지낸 그가 법무법인 세종에 새로운 둥지를 튼 지 6개월이 지났다. 검찰에서 일하며 강력범죄부터 경제범죄까지 다양한 수사를 두루 거친 경험으로, 손꼽히는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에서 그를 불러들였다.

중학생 시골 소년 검사를 꿈꾸다
이 변호사는 송악읍 영천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던 송악읍 일대는 현재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뤘다. 동네 형들과 조개를 잡으러 다닌 한진 내도리 바닷가도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변했다.

기지초등학교와 송악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검사를 꿈꿔왔다. 당시 경찰이었던 작은아버지는 그에게 검사라는 직업을 권했고, 그때부터 검사를 목표로 공부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학업을 위해 천안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단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2학년 때 처음으로 사법고시를 치렀는데 고배를 마셨다. 첫 실패에 그는 ‘내가 검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자신을 채찍질했고, 세 번의 도전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300명의 동기들 중 상위권으로 판검사 임관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홀로 타지생활을 시작했지만 외롭고 힘들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나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은퇴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을 모실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지초등학교 동창회 ‘삼삼회’와 송악중학교 동창회 ‘이사회’에 참석하며 고향 친구들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고 있는 그는 후배가 보내주는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초등학교·중학교 동창들과 연락하면서 당진 소식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만큼 고향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진이 발전하고 있는 모습은 뿌듯하지만, 옛 정취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도 느낀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검사는 기본적으로 범죄수사, 수사집행, 경찰수사지휘 업무를 맡는다. 또한 법률가로서 법을 제정하는 업무도 담당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업무로 개인적인 여가와 취미를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게다가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러 부담감과 압박감이 컸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이 변호사는 “검사는 업무량이 많고 힘든 일이지만, 검사로 일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며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24년간 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성취감이 지금까지 법조계에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 수사 맡아
하지만 이 변호사에게도 힘들었던 순간은 있었다. 저축은행 횡령 사건을 맡아 수사를 했는데, 사건의 범위가 방대하고, 환수 조치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했다. 또한 이 변호사가 광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였을 당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진도 팽목항에서 벌어진 이 사고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여러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 변호사는 “어려운 수사가 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며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두 사건을 떠올리면서 항상 나를 되돌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 앞에서 양보는 없다는 그는 법조인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며, 진실 앞에서는 어떤 권력도 개입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법조계 비리나 유착관계가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진 않는다”며 “진실을 추구하며 소신껏 일하는 검사도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어 “출세에 연연하지 않는 열정적인 검사를 꿈꿔왔다”면서 “비록 힘든 일도 있었지만, 검사로 일했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법조인은 사회 파수꾼”
이 변호사는 “지난 24년 동안 검사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이제는 검사직을 내려놓고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 변호사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검사는 주어진 업무를 맡는 반면 변호사의 경우 직접 일을 선택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특히 그가 지켜본 법무법인 세종은 나름대로 사회적 책임을 갖고 정도를 걷는 로펌인데다, 세종 창립자인 신영무 변호사가 당진 출신이라는 점도 세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법조인은 사회의 파수꾼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법조계가 학연·지연·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국민들을 위한 조직으로 신뢰를 얻길 바랍니다. 변호사로서 새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로 일하겠습니다.”

 

>>이두식 변호사는
- 1962년생 송악읍 영천리 출신
- 기지초등학교(33회), 송악중학교(24회) 졸업
- 사법연수원 제21기
-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임관
- 2009년 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 수사부장
-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
- 2014년 광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2015년 서울고등검찰청 형사부장
- 現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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