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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이하며
품앗이학교 어린이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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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소녀상을 아시나요?
8월14일은 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첫 증언한 것을 기리기 위해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된 날이다. 이번 ‘위안부 기림일’을 맞이해 당진 소녀상을 세우는데 함께 한 당진어울림여성회 김진숙 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Q. 소녀상을 세운 동기는?
A. 연세가 많으시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 남아있는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에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당진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고 더불어 미래세대가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소녀상을 세우게 되었죠.

Q. 당진의 소녀상이 일반적인 소녀상들과 모습이 다른 이유는?
A. 다른 곳에서는 소녀상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면 서서 손을 뻗고 있는 당진의 소녀상 모습은 억압됐던 소녀의 진취적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에요. 또한, 소녀상을 만드신 분은 당진에서 살면서 당진에서 작품 활동을 하신 작가님께서 재능기부로 직접 만드신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죠.

Q. 앞으로의 계획은?
A. 소녀상을 세운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녀상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위안부의 일을 알리고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청소년들과 자원 봉사단을 만들어 꾸준히 청소도 하고 관리도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계획이에요. 또한 당진에도 위안부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 한 마리와 외롭게 살고 계신데 친구들이 찾아가서 위로 해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날개를 펴고 싶은 할머니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 노예로 살아야 했던 소녀들이 있다. 하루에 10명에서 많게는 50명을 상대해야 했던 그녀들의 중에는 고작 10대의 소녀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이 생활을 그만 둘 자유도, 외부의 출입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성병에 걸리거나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일본군 위안부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이 되고도 50년이 가깝게 역사를 왜곡하며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던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피해자를 넘어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할머니들을 소개한다.

1.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성 노예가 된 소녀 – 정서운 할머니
정서운 할머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유롭게 살고 있던 중 아버지가 집안에 있는 놋그릇을 일본군에게 갈취당하지 않기 위해 숨기자 한 사람이 밀고를 하여 감옥에 끌려간다. 아버지를 석방을 돕다 정서운 할머니는 인도네시아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 온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의 기억을 견디지 못하시고 죽기 위해 말라리아 약 40알을 한 번에 삼켜 삼일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고통이 뼈 속까지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서운 할머니 이야기는 ‘소녀 이야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2. “내 나이 88세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 - 이용수 할머니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는 수요집회에도 참여하시고 대학교 강연, 일본과의 법적 싸움을 대비하여 법도 공부하시는 정말 멋있는 할머니다.  아베 총리가 미국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워싱턴에 가서 강연도 하고, 수요집회 때 “내 나이 88세,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다!”라는 말로 앞으로도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에 맞서 끝까지 싸워나갈 계획을 전했다.

기억해야 할 ‘소녀’들의 이야기
2016년 8월 11일 품앗이학교 어린이기자단은 충남방송 스튜디오를 찾았다. 지난 4월에 ‘지구 살리기’ 활동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이크를 차고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테이블에 작은 소녀상을 올려놓았다. 오늘 출연은 3일 앞으로 다가온 ‘위안부 기림일’을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찾게 된 방송이다.

처음 할머니가 그리신 그림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라는 벽돌에 새겨진 할머니의 글과 마주하고 할머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이기자단의 2년간의 위안부 활동 영상이 화면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위안부 기림일’을 소개하고, 할머니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렸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도 전했다. 여러 질문들이 오고 가고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가 끝날 때쯤, 장래 희망을 묻는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어린이기자단 5명의 친구들 모두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린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건 어느 한 위안부 할머니의 “조국은 오래전 해방됐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해방되지 못 했다”라는 말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땅에 ‘그 소녀’들이 겪었던 아픔이 되풀이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25년간의 외침, 수요집회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7월 27일 어린이기자단은 수요집회에 참여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꼭 사죄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더위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집회를 시작한 이래 25년간을 이어온 세계 최장기 평화집회다. 이날 수요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방학이라 그런지 다른 때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그 중 멀리 제주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가시리>라는 곡을 오카리나로 연주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했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이번 수요집회에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여러 나라를 직접 다니며 증언하시는 할머니들의 건강이 좋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젠 90세를 넘긴 할머니들은  25년간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증언했고,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알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 이젠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할머니! 기운 잃지 마세요.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손자, 손녀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외로워하지 마세요.’

시민과 함께 한 ‘위안부 기림일’
8월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어린이기자단은 8월 주제를 일본군 ‘위안부’로 정했다. 그동안 해왔던 위안부 활동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고, 위안부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의 시간을 가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알림 활동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모아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 위안부를 알리는 일부터 체험까지 직접 기획과 예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기회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알림 활동을 위해 8월 7일 삽교천을 찾은 어린이기자단은 각자 맡은 역할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알림판, 돌림판을 이용한 위안부 문제 맞히기, 위안부를 상징하는 나비 팔찌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위안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한 시민은 어린이기자단에게 “힘내라”는 말과 함께 음료수를 건넸다.

몇몇 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영화를 통해서나 교육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시민도 있었다. 몸에서 땀이 흘렀다. 조금씩 힘겨워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슴에 달린 소녀상 배지의 의미를 친구들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어두웠던 시대를 아프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삶을 알리기 위한 삽교천에서의 활동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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