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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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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대장간 손창식 씨
4대 째 이어지는 대장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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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기술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수차례 담금질로 만든 단단한 철기구

 

새빨간 불덩이가 대장장이의 담금질에 모양을 잡아 간다. 뜨거운 불 속에 철을 달궜다가 망치로 두들기는 담금질을 수차례 반복하면 더 굳고 단단한 농기구가 만들어진다. 40℃에 육박하는 더위까지 집어삼킬 듯 2500℃가 넘는 가마 앞에서 철과 씨름하기를 한참. 쇳덩어리에 불과했던 철은 대장장이의 손길을 통해 유용한 농기구로 거듭났다.

아버지에 아버지, 또 그 아버지에 아버지가 운영해오며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당진대장간 손창식 씨가 야장((冶匠: 대장장) 기술을 인정받으며 지난 7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는 “대장간 일은 내 평생의 일”이라며 “대를 이어 야장 기술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뿌듯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손창식 씨가 만든 농기구들
▲ 손창식 씨의 손. 작업 중 손가락 절단 사고로 검지 손가락을 잃었다.

아버지 도우며 배운 야장 기술

어느덧 그의 나이도 66세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풍구로 바람을 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는 싫고 좋은 것도 없었다. 자연스러운 삶의 현장이었을 뿐이다. 부모님의 일터였던 대장간은 그에게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그렇게 어깨 너머로 기술을 하나씩 익혀 갔다.

때로는 어른들이 없을 때를 틈 타 불 앞에 섰다가 다치기도 했다. 그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엔 조금 다쳐도 대수롭지도 않았고, 일이 힘든 줄도 몰랐다”며 “당연히 부모님을 따라 일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운명처럼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 대장간에서 야장 기술을 배우는 건 그에게 너무나 재밌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조할아버지를 거쳐 증조할아버지, 또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대장간을 운영했다. 한 때는 아버지와 큰형, 손창식 씨까지 3부자(父子)가 대장간 일을 함께 돌봤던 때도 있다. 그 당시에는 가족 외에도 3명의 대장장이가 더 있어야만 일이 가능할 정도로 대장간에서 만들어 내는 농기구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값싼 철기구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간척된 땅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농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대장간을 찾는 발길도 줄었다. 지금은 손창식 씨만이 남아 당진대장간을 지키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손기술은 여러 곳에서 인정받아 당진은 물론 이고 서울과 전라도 등에서 제품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쓰는 사람을 위한 맞춤형 철기구

4대에 걸쳐 당진대장간을 운영해 오면서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도 참 많다. 특히 바다와 갯벌이 많은 당진의 지리적 특성상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아주머니들이 이곳을 많이 찾곤 했다. 지금도 종종 장날이면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손에 맞게끔 농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좀 더 일하기 편하게, 그들의 마음에 쏙 들게 농기구를 만들어 손에 쥐어줬을 때만큼 뿌듯한 것이 없단다. 그는 “무엇보다 손님들이 물건을 잘 사용할 수 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그들이 일을 하면서 다치지 않도록 기구를 만들 때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 불에 달 군 쇠

어로기술에 독창적 기술 보유

손 씨는 바다와 관련된 해양분야의 어로기술과 관련해 독창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이점을 인정받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1-3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는 조새(굴을 채취하는 연장)나 갯벌용 쇠스랑을 비롯해 20여 종 이상의 어업용 기구를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는 그만의 기술을 갖고 있다. 그는 장어잡이용 창과 고기잡이용 창, 수초제거용 낫, 닻, 굴따기 조새 등 어획 도구와 자귀와 가래, 천치 등 다양한 철물 제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는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온 기술을 제대로 인정 받아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몸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 그는 눈만 뜨면 하루가 지나간다고 말했다. 특히나 당진대장간을 전적으로 맡은 2~3년 전부터는 청력과 시력 등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항상 불 앞에 있기 때문에 화상을 입을 때도 많고 쇠를 다듬는 소리에 청력이 나빠져 이제 작은 소리는 듣기가 어렵다. 여기에 지난 3년 전에는 칼을 만들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지만 1년 동안 치료를 위해 병원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도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으면 대장간에 나가 다시 불 앞에 서는 그다.

▲ 손창식 씨의 아들 결혼식 날. 아내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나 손 씨의 누나가 자리를 대신했다.

“아들과 함께 전시장 만들고파”

늙어가는 시간 속에 이제 아들이 그를 도와 대를 잇겠다고 나섰다. 현재 아들 손용환 씨는 주말을 이용해 아버지 손 씨의 일손을 거들며 기술을 익히고 있다. 대장간 부자는 앞으로 후손들에게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남기고자 야장 체험이 가능한 전시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손 씨는 “아들이 대를 이어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무척 기뻤다”며 “전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당진시대가 시작하는 영상 사업인 <영상으로 만다는 당진의 장인> 편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영상은 이후 당진시대 홈페이지 및 충남방송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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