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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23:12
  • 수정 2016.09.26 08:21
  • 호수 1125

세상사는 이야기 현대제철 김성규 계장(송산면 매곡리 출신)
칠전팔기 명장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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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밀링·연삭 등 6개 기능사 자격증 취득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국가품질명장’

“어렸을 땐 공원과 지하철역에서 노숙생활을 한 적도 있어요. 회사가 부도나기도 했고…. 돌이켜 생각하니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좌절할 때마다 어느 곳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죠.”

현대제철에서 벨트컨베이어 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규 계장은 송산면 매곡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형편으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학교를 중퇴한 뒤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의 한 염색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었지만 16살 어린 소년에게는 너무 혹독했다.

16살에 시작한 사회생활

방황의 연속이었다. 차갑고 낯선 서울에서 공장을 그만 둔 그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공원과 지하철역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열등감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다.

김 계장은 당시 ‘더 나은 직장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홀로 다짐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철없는 나날을 보낼 나이에 김 씨에게 일자리는 절실했다. 그 시기에 만난 지인을 통해 한 기계를 다루는 회사에 입사해 청소부터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업무의 종류는 중요치 않았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2년 동안 같은 생활이 반복됐다. 공장 사람들은 남에게 기술을 잘 알려주지 않아 좀처럼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회사가 경영난을 겪었고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기술이 있던 직원들은 대부분 이직했지만 김 씨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을 받지 못해도 그만 둘 수가 없었다”며 “결국 사람들이 퇴사하면서 회사가 문을 닫기 전까지 5년 동안 선반·밀링·열처리 등 중급수준의 기술을 습득했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10여 년 동안 기술과 경력을 쌓아갔다.

한보 부도, 그리고 현대제철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채용소식을 듣게 된 그는 18년 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당진으로 내려와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미끄러졌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계속 문을 두드렸고, 세 번째에 드디어 한보철강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설비관리팀에 배치돼 1년 만에 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업무적으로 인정받으며 회사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입사 2년만인 1997년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다시 힘든 나날이 시작됐다. 당시 많은 지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금과 보험까지 해약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타격이 컸다.
또 다시 찾아온 절망의 상황에서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 다시금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일자리를 되찾은 그는 경제적으로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갖게 됐다. 김 계장은 “좌절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결과였다”며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버텼고, 결국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삶의 원동력을 ‘어머니’로 꼽았다.

노력의 결과, 국가품질명장

한보철강이 현대제철로 인수되기 전까지 긴 공백의 시간 동안 그는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재기를 꿈꿨다. 그는 현재 △용접기능장 △선반기능사 △보일러 산업기사 △밀링기능사 △연삭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등 6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김 계장은 당시 취득한 자격증을 밑거름 삼아 현재 현대제철 당진공장 내 753개 100km에 달하는 벨트컨베이어를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근 국가품질명장과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김 계장은 “국가품질명장을 표창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 두고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김 계장은 올해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지금은 신성대 자동차학과(야간)에 재학 중이다. 기회가 된다면 4년제 대학에도 진학해 배움을 이어가고 싶다는 그는 “요즘은 옛날처럼 기술인(장인)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키울 수 있다고.

“장인정신이 없으면 절대로 명장의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좌절의 시기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들은 저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부족하고 배움에 목말라 있기에 오늘도 묵묵히 저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 기사는 당진시대가 추진 중인 영상사업인 <영상으로 만나는 당진의 장인> 편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영상은 당진시대 홈페이지 및 충남방송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기능한국인 : 전문계고, 폴리텍대학, 직업훈련원 등을 졸업하고 10년 이상 기능분야, 산업체 근무경력이 있는 중소기업 CEO, 산업현장 종사자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숙련기술인을 매달 한 명씩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하고 있다. 선정자에게는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 및 기념패 등이 수여되며, 산업현장교수, 학교직업진로교육 등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한다.

※국가품질명장 : 10년 이상 현장에서 근무한 자로서 장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선발해 대통령이 직접 지정패를 수여하는 제도다. 국가품질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근무태도와 능력, 인간관계와 관련된 18개 항목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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