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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수 우강면 송산1리 노인회 총무
살벌했던 월남 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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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강면 송산1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35년 동안 우강에 위치한 대전전파관리소 당진사무소에서 청원경찰로 근무했다. 퇴직 후 나는 송산1리 노인회 총무로 3년 째 활동하고 있다. 이 세상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군인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군대생활이 좋았다.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와 잘 맞았다. 옛날엔 과거 사진만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감성이 많이 무뎌졌는지 덤덤하다.

첫 번째 사진은 1970년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군수물자 지원부대에 소속돼 있었다. 22세 때 자원해서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 사진은 휴식시간에 중대장과 동료들과 함께 야자수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우리 부대는, 도깨비 부대라고 불리던 백마 28연대에 물자를 지원했는데, 이 부대에는 노천극장이 있었다. 극장에서는 한국가수들이 위문공연을 하곤 했는데, 노천극장 밖 병원에는 전쟁에서 부상 입은 군인들이 이송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의 다른 모습이었다. 참 살벌했다.

두 번째 사진은 합덕에 있는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4세였다. 난 송악읍 기지시리 출신의 아내를 중매로 만났다. 아내의 참한 모습에 첫눈에 반했다. 결혼해서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나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내가 가장이었다. 아버지 역할을 했던 나와 같이 아내는 어머니의 역할을 도맡았다. 4명의 동생들을 대학을 보냈고, 동생들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아내가 뒷바라지를 했다.

세 번째 사진은 1991년 제주도 용두암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하면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이 있다. 월남에서 만난 친구인데, 그 친구가 제주도 토박이였다. 나와 그 친구는 참전했던 1년 동안 동거동락 하면서 지냈다. 아내 같던 친구다. 이 친구는 현재 부산에 살고 있어 가끔 만나는데, 그 친구 덕분에 제주도도 많이 갔다.
특히 난 제주도에서 천지연 폭포를 가장 좋아한다. 시원하게 내리는 폭포가 내 마음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네 번째 사진은 2000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찍은 사진이다.
친목회 회원들이랑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 성이 너무 길어서 끝까지는 오르지는 못했다. 그동안 내가 가본 여행지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중국의 장가계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더라.

 

다섯 번째 사진은 아들 대학교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이다.
아들은 대전에 위치한 한남대를 졸업했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현재 자녀들은 천안과 대전에 살고 있고, 6명의 귀여운 손녀, 손자들을 안겨줬다. 자녀들을 시집, 장가 보내도 나와 아내에겐 항상 어린아이 같다. 모든 부모들이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항상 건강했으면 한다. 또한 손자, 손녀들도 잘 자라주길 바란다. 특히 외손녀 하원이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다. 지난번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잘 자라줘서 우리나라를 빛내는 멋진 선수가 되길 소망한다.

>>안명수 우강면 송산1리 노인회 총무는

·1947년 우강면 송산1리 출생
·우강초·합덕중 졸업
·합덕농고(현 합덕제철고) 졸업
·대전전파관리소 당진사무소에서 35년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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