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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2 창간 23주년 특집 특별인터뷰 남정현 소설가(정미면 매방리 출신)
“문학은 인간을 사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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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지>로 중앙정보부 끌려가 고초
“예술가에겐 혁명가 기질 있어야”

 

“판사가 제게 물었습니다. ‘문학이 무엇이냐?’고. 저는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어요.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처한 환경을 직시하고,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견고한 벽이 놓여있던 시절, 당시 미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작가는 정치권력에 의해 모진 고초를 겪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는 그에게 “다시 글을 쓰면 손을 잘라버리겠다”며 겁박했다. 남산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당하며 독방에 갇혀 지낸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자신을 고문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개 촛불이 타올랐던 지난 12일, 서울 혜화동에서 남정현 작가를 만났다. 우연인 듯 필연처럼, 그날 대학로는 피 끓는 젊은이들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남 작가는 “오늘의 함성은 곧 우리들이 처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이것 또한 인간의 불행을 끊어내려는 투지”라고 말했다.

자주권을 잃어버린 ‘똥의 땅’

남정현 작가는 30대 초반에 소설 <분지>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망한 어머니를 둔 홍만수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만수는 ‘양공주’인 자신의 누이동생을 학대하던 미군에게 복수하려고 그의 아내를 겁탈하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소설 <분지>는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만수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다.

‘똥의 땅(糞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소설은 결국 외세에 의해 식민지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담고 있다. 만수와 그의 가족의 삶은 곧 한국전쟁 이후 자주권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상징해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5년 <분지>가 현대문학에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는 소설을 통해 북한의 반미선전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씌워 남 작가를 구속했다. 북한노동당 기관지에 작품이 게재됐다는 이유에서다. 열 달 가까이 진행된 공판에서 검사는 남 작가에게 7년을 구형한 반면, 판사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결국 남 작가는 구속적부심사에서 풀려나게 됐지만 검찰은 끈질기게 남 작가를 괴롭혔다.

병상에서 할 수 있던 건 독서 뿐

이런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정미면 매방리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많이 다녔다. 아버지 故 남세원 선생은 당진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서산교육장을 역임했고, 퇴직 후에는 천의리에 위치한 미호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어릴 적 그는 폐결핵, 장결핵, 임파결핵을 잇따라 앓을 정도로 몸이 많이 쇠약했다. 사람들은 “곧 죽을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였고, 이웃집에서는 날마다 어머니의 곡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했을 정도였다. 남 작가는 “어릴 적 많이 아팠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저 내가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며 “어머니의 바람은 오로지 내가 죽지 않고 사는 것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는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그가 갖고 있는 학창시절의 기억은 병치레했던 기억들 뿐이다.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밖에 없었다. 자칫 건강을 해칠까 걱정했던 어머니는 책을 읽지 못하게 했지만 그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병상에서 소설가라는 꿈을 키웠다.

“고향 친구 중에 성찬모라는 녀석이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형이 있었죠. 이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형의 서재에 있는 책을 꺼내 읽곤 했어요. 교육 분야의 책이 많았던 아버지와는 달리 형의 서재에는 사회과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많았어요. 그래서 형의 서재에서 다양한 책을 많이 접하곤 했죠.”

여든이 넘은 노인은 여전히 고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상경한 그는 나이가 들어 자주 고향을 찾지 못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고향친구들을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듯 ‘집중’

한편 25살 젊은 나이에 소설 <경고구역>으로 등단한 남정현 작가는 그 다음해 <굴뚝 밑의 유산>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데뷔 3년 만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문학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분지필화사건’을 겪게 되면서 작품활동이 크게 줄었다.

“글을 쓰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뙤약볕 아래에서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듯, 초점을 맞춰 연기가 오를 때까지 아주 집중해야 하는 일이죠. 요즘엔 나이가 들었는지 글에 집중하려면 현기증이 나서 글을 못 쓰고 있어요.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집중하는 것이 퍽 힘들다는 걸 이제와 깨닫고 있지요.”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던, 목숨을 걸고 써왔던 글이 힘겹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는 달리, 세상은 점점 더 진보해나갈 거라 믿었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그리고 다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펜을 잡는 후배들에게 그는 “혁명가에겐 예술가의 기질이 있어야 좋은 혁명을 할 수 있고, 예술가에겐 혁명가의 기질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며 “<쿠오바디스>라는 역사소설을 쓴 폴란드 작가 셴키에비치와, 독일의 시인 하이네처럼 작가에겐 비상한 상상력과 번개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남정현 작가는…
- 1933년 정미면 매방리 출신
- 1958년 소설 <경고구역>으로 등단
- 소설 <너는 뭐냐>, <굴뚝 밑의 유산>, <준이와의 3개월>, <허허선생>, 소설선집 <분지>, 연작소설집 <허허선생 옷 벗을라> 출간
- 1961년 제6회 동인문학상 수상
-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 부위원장 역임
- 2002년 제12회 민족예술상 수상
- 2016년 심훈문학상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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