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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대안
  • 입력 2016.12.16 20:54
  • 수정 2016.12.20 08:44
  • 호수 1137

800km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한 김은지 씨(정미면 천의리, 부 김하진·모 김연란)
스물 셋 청년, 길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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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미래…경쟁 속에 뒤쳐질까 두려움
“여행 통해 다양한 삶 보며 위로 받아”

길을 걸었다. 장장 800km. 한 달 간의 도보여행를 책임질 큰 배낭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길 위에 섰다. 평지를 걸을 때도 있었지만 험준한 산을 넘기도 했다. 햇살이 비추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나처럼 홀로 길 위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위로를 받았다. 오르락내리락 길 위에서 인생이라는 건 긴 여정임을 깨달았다.

두려운 미래…“쉬고 싶었어요”

막 청춘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김은지(23·정미면 천의리) 씨가 최근 한 달간의 유럽여행과 한 달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을 다녀왔다.

“그냥 쉬고 싶고, 여행을 떠나고 싶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스물 셋은 사춘기 아이들보다 더 불안하고 위태롭다. 어른들이 보기엔 영글지 않은 꽃망울처럼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이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취업 걱정에 앞날은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다. 은지 씨도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우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풀리지 않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고, 여유를 갖고 싶었다. 부모님께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 눈엔 아직도 어린 아이 같기만 한데, 여자 혼자서 두 달씩이나 여행을 하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은지 씨는 여행계획과 루트를 꼼꼼하게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연락하기로 약속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야고보의 무덤’을 향해

호기롭게 여행계획을 세웠지만 두려운 것은 은지 씨도 매한가지였다. 매일 관련 정보를 찾고, 책을 읽었다. 그 때 읽은 책이 오스트리아 여행칼럼니스트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였다. 기자라는 삶을 뒤로 하고 7년 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깨달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은지 씨는 “이 책을 통해 혼자 여행을 떠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9월 19일,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은지 씨가 택한 길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775km의 순례길이다.

시작부터 넘어야 하는 피레네 산맥은 무척 가파르고 험준해서 사람들이 조난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지역이다. 산맥을 넘고 나서도 34L짜리 큰 배낭을 메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을 한 달 내내 걷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평균 20~30km씩 걸었고, 많이 걷는 날엔 44km까지 걸었다. 처음 걷기 시작한지 2주 동안은 발이 너무 아팠다.

“발이 너무 아파서 운동화를 신었다가, 크록스(고무재질로 만든 편한 신발)를 신었다가 했어요. 슬리퍼가 찢어지기도 했고요. 배낭도 처음엔 엄청 무겁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제 몸처럼 느껴지더라고요(웃음).”

“힘들 땐 잠시 쉬어가도 돼”

다행히 여행을 하는 동안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지냈다. 간혹 위험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는데, 은지 씨에게는 위험했던 순간들도 피해갔다. 세계 곳곳에서 온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이들은 지루하게 이어진 길을 걷는 동안 큰 힘이 됐다. 특히 중년여성인 미국인 친구는 은지 씨가 순례길을 지나 혼자 여행할 때 바르셀로나까지 올 정도로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리고 SNS를 통해 같은 시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던 고등학교 선배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긴 여행을 끝내고 지난 12월 1일 돌아온 은지 씨는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 학기 휴학하는 것조차 망설일 정도로, 쉬고 가면 남들보다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힘들 땐 잠시 쉬어 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엔 대기업에 가야할 것 같고, 좋은 곳에 취직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힘들어도 즐기면서 사는 삶을 살고 싶단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후회되는 건,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거였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다시 갈 거예요. 그리고 언젠간 사막을 여행하고 싶어요.”

김은지 씨는
· 1994년생. 정미면 천의리 출신
· 천의초 62회 졸업
· 당진중 60회 졸업
· 호서고 40회 졸업
· 건양대 의공학과 4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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