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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용선 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
“무거운 옷 벗고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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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국민들의 사랑 받으려면 몸부림 쳐야”
“경찰개혁 부담 크고 고통스러운 일”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말 아껴

순성면 양유리 출신 정용선 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이 지난 1일 30여 년 간의 경찰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퇴직 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농담을 던지며, 공직에 있을 때 찾아뵙지 못했던 이들을 만나고, 인사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정 전 청장을 지난 21일 당진에서 만났다. 경찰생활을 하면서 늘 긴장 속에 살았었는지 “무거운 옷을 내려놓으니 홀가분하다”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고향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퇴임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서울과 당진을 오가며 공직생활을 할 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분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관사에서 가져온 책과 짐들을 틈틈이 정리하고 있다. 27평 서울집은 물론이고, 일부 짐을 가져다 놓은 고향집에도 정리해야 할 것들이 수북하다. 한편으로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그동안 자료를 정리하고, 또 기록하고 있다. 퇴임을 하면서 경찰후배들과 지인들에게 받은 문자메시지와 편지, 메일을 하나씩 다시 읽어가면서 정리하는 중이다. 엊그제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늘 5시30분이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는데, 피곤했었는지 눈을 뜨니 8시가 넘어 밖이 밝더라. 기분이 묘했다. 

30여 년간 몸담았던 경찰생활을 마무리 했다. 허전하지는 않나?
그동안 무거운 옷을 입고 있었나 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크다. 대과 없이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흉악범죄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이다. 해마다 순직하는 경찰도 많다. 그러나 경기남부청장을 맡아 퇴임할 때까지 순직자 하나 없이, 큰 사고 없이 공직생활을 마무리해 무척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설렘도 있다. 경찰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 홀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새장 속의 새가 하늘로 날아가기 전, 약간의 두려움이 깃든 설렘인 듯하다.

처음부터 경찰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는 법관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땅을 팔아서라도 서울대를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당시 형님도 대학생이었고, 집안 형편을 생각해 학비가 들지 않는 경찰대에 진학했다. 당시엔 경찰대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식이 부족해 부모님이 많이 속상해하셨다. 하지만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단상에 나가 대통령이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고, 장관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해 왔나?
“돈을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경찰은 특별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 치안은 끝이 없다. 작은 실수가 생명과 안전 문제와 결부되면, 국민에게도 치명적이고 경찰 조직에도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어 늘 긴장 속에 살았다. 세계에서 최고로 일 잘하는 경찰관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라는 평을 받고 싶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 탓에 ‘워커홀릭(일 중독자)’라는 얘기도 종종 들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일관성 있게 봉사하는 공직자의 표상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근무해 왔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보람있는 일은?
근무하는 동안 노인·아동·여성·장애인·탈북민 등 치안 약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느낀다. 2012년도 충남지방경찰청장으로 근무할 때 추진했던 노인안전종합치안대책은 대통령 단체표창을 받았는데, 2014년 경찰청에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지방청장을 하면서 추진했던 여러 치안대책이 경찰 내에 자리 잡았다. 특히, 장애인보호 치안대책은 책임자였던 충남청, 대전청, 경기남부청, 경찰청 수사국 등 4개 기관에서 모두 장애인인권상을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무척 감사하고 보람된 일이다.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경찰 발전과 경찰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처우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성과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경찰청장 승진에 대한 기대도 많았는데.
솔직히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장이 해야 할 경찰개혁 문제는 부담도 크고, 조직에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짐을 지지 않게 된 것은 어찌 보면 개인적으로는 다행일 수 있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근무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 전 청장의 정계 진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알고 있다. 그러나 고향에는 나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 무엇을 해야 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다.

SNS 활동을 무척 열심히 하고 있다.
처음엔 ‘트위터가 뭐지?’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하다 보니 이를 통해 좀 더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경찰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경찰이 국민들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열심히 하게 됐다. 민원을 제보하고,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는 등 실시간으로 쌍방소통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현재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를 활용하고 있다. 시민들과 후배 경찰관들이 고위직이지만 가까이에서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식기다. 그동안 소홀했던 주변 지인들을 돌아보며 차분히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생각이다.

경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 경찰은 범인 검거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유능하지만, 권한이 부족하다. 또한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식민지 경찰의 권한 남용으로 인해, 마치 원죄처럼 국민들에게는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 안타깝다. 국민에게 경찰이 신뢰와 사랑을 받으려면 그야말로 몸부림에 가깝도록 낮은 자세로,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 

고향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랫동안 큰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덕에 공직생활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용선 전 청장의 ‘낯선 리더십’

어떤 리더십을 갖고 경찰조직을 이끌어 왔냐는 질문에 정용선 전 청장은 후배들의 말을 빌려 ‘낯선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청장으로 부임하면 가장 먼저 청사를 청소하는 청소노동자들을 관사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말단 직원이 상을 당하면 직접 조문을 갔다. 불쑥 동네 파출소를 찾아 일선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에게 간식을 전하고, 직접 154개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했다는 정 전 청장은 “내가 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권위적인 조직 내에서 권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힘 있는 사람보다 약자을 우선 챙겼다는 그의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후배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예퇴직을 아쉬워했다. 다만 완벽주의에 가까운 특유의 꼼꼼함과 조심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정계 진출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펼쳐나갈지, 퇴직 후에도 그의 거취 문제는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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