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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시인이 되지 못한 윤동주,
별이 되어 시를 남기다.

당진시대l승인2016.12.30 17:22l(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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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1월의 그날, 그 첫 번째는 1948년 1월 30일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윤동주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동주’를 통해서였다. 2016년 개봉된 ‘동주’로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영화 ‘동주’에서 29세 윤동주가 옥에서 죽는 장면과 함께 ‘서시’가 낭독된다. 어두운 시대 시인을 꿈꿨지만 살아서 시인이 되지 못한 윤동주,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된 그날 윤동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보고자 한다.

 

영화 동주로 본 윤동주

1917년 북간도에서 사촌지간인 송몽규와 윤동주는 함께 나고 자랐다. 명동 소학교에서는 함께 잡지 <새명동>을 내며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언어도, 이름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노와 슬픔이 이어지는 삶이었을 것이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최현배 선생의 가르침으로 우리 민족 문학의 소중함을 배우며 시인의 꿈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받게 된 윤동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며 괴로워한다.

그때 쓰인 시 참회록에 보면 “밤이면 밤바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라는 시로 부끄러운 자신의 마음을 그렸다. 내 나라의 말과 글을 쓸 수 없었던 그 시절 조국에 언어로 쓰인 자신의 시를 연희전문학교 후배인 정병욱에게 남기고 일본 유학을 떠난 윤동주는 1943년 조선의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영화 <동주>에서는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하는 일본순사에게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내가 부끄럽고, 독립에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 부끄러워 서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며 자백서를 찢는 윤동주의 모습이 나온다.

 

시인으로 다시 돌아온 윤동주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강제로 놓은 의문의 주사로 인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눈을 피해 윤동주의 시를 보관했던 정병욱은 광복 후 마룻바닥 아래 항아리에 보관해두었던 윤동주의 시를 출간한다. 살아서 시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윤동주는 별이 되어서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

나라를 뺏긴 백성으로 시인의 꿈을 가진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히라누마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했으며, 고통스러운 시대에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을 괴로워한 윤동주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집의 이름을 ‘병원’으로 지으려 했던 그는 세상이 온통 환자 투성이여서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 그로 인해 아픈 사람들, 지금 윤동주가 다시 기억되는 이유다.

 

계성초 3학년 이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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