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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

당진시대l승인2016.12.30 17:23l(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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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공주라 불리지 못하고 옹주라 불리던 분, 고종의 외동딸로 아버지의 사랑 속에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이다. 1962년 1월 26일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김포공항에 모여든다. 오랜 기간의 정신질환으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비행기를 내려온다. 일본으로 끌려 간지 38년 만이며 그녀의 나이 51세였다.

 

영화 속에서

‘영화 덕혜옹주’가 그녀의 삶을 그대로 영화화 한 것이 아니어서 역사왜곡이 아니냐 라는 의견과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잊혔던 그녀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재조명이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조국에 돌아오고 싶어 했던 간절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일 것이다.

영화에서 덕혜옹주의 약혼자 김장한이 덕혜옹주를 상해로 망명시키려 하는데 일본군에 발각돼 총격전을 하게 된다. 그때 김장한이 덕혜옹주가 위험함을 느끼고 먼저 비밀통로로 빠져나가라고 하며 “옹주님, 10분 후에 데리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패를 하게 되었고, 김장한이 덕혜옹주를 다시 만난 것은 가까운 이들의 연이은 죽음과 큰 충격으로 조발성 치매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다시 만난 덕혜옹주가 김장한에게 “10분 후에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라고 얘길 한다. 덕혜옹주의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하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덕혜옹주가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방침에 따라 일본식 교육을 받으며 일본으로 가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나이가 14세였는데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긴 시간이 걸렸으니 너무나 슬픈 역사의 한 모습이다.

 

그리움이 쌓인 곳...낙선재

꿈에도 그리던 조선 땅, 고국에 돌아왔지만 이미 많이 진행된 마음의 병은 회복되지 않았고 낙선재에 머무르며 가끔씩 정신이 맑을 때면 가슴에 담긴 말을 글씨로 쓰곤 했다고 한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아이가 처음 글씨를 배우는 것처럼 삐뚤삐뚤한 글씨지만 덕혜옹주의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선의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 했던 여인, 누구보다 존귀했지만 모든 이에게 잊혀 진 여인 덕혜옹주는 그렇게 불행한 우리 대한제국의 역사와 맞닿아 있었다.

 

계성초 4학년 성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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