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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01.21 13:43
  • 호수 1142

[독자투고]박은주 북키스 독서토론동아리 회원
바지락을 품은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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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두 해가 지났다. 아는 사람 없는 이곳에서 힘들어하는 내게 바다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푸른빛으로 출렁거리는 바다는 고향처럼 편안했다. 이사 오기 전까지 아니,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해가 뜨는 동해 바닷가에서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해가 지는 서해에서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 당진에서 삶은 빛나는 햇살보다는 홍시처럼 잘 익은 일몰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 같다. 고향을 닮은 바다를 보면서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바다는 닮은 듯 닮지 않은 것이 있다. 같은 바다이지만 동해와 서해의 다른 모습은 바로 갯벌이다. 동해에서만 살았던 내게 갯벌은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곳이지 현실에는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갯벌을 품은 바다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바다를 떠올리면 당연히 파도 소리가 먼저 달려와 귓가에서 철썩거렸다. 파도 소리가 밀려나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파도 소리에 잠이 들고 눈을 뜨던 나에게 갯벌은 신비한 마술 같았다.

이사 오자마자 안면도로 캠핑을 간 적이 있다. 바닷가 솔밭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참 불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한결같은 소리로 철썩거리던 파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었다. 손전등을 들고 파도가 밀려난 조용한 바다로 달려갔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갯벌을 우리는 소리를 찾아 앞으로 달려가 보았다. 한참을 가도 소리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파도 소리가 어둠으로 도망치는 것 같았다. 술래잡기하듯 파도를 찾아 우리도 어둠으로 계속 들어갔다. 도망친 파도가 돌아올 때는 순식간에 들어온다며 남편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때부터 갯벌은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물때를 알아보고 물이 많이 빠지는 날 바지락을 캐러 갯벌로 갔다. 처음 간 곳이 국화도 갯벌이었다. 바지락 캐러 가는 사람들로 배가 만원이었다. 국화도에 가보니 먼저 온 사람들로  알록달록 사람꽃이 피어있었다.  많은 이들 속에서 초짜인 우리 부부가 캘 바지락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가만히 보니 바지락을 캐는 이들의 모습이 제각각이었다. 우리처럼 초짜와 전문가인 고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곁으로 보이기에도 고수는 복장이 갯벌에서 일하기에 최적화된 차림이었다. 특히 우리 눈길을 잡은 것은 궁둥이에 붙어있는 휴대용 의자였다.

우리 부부는 고수 같은 한 할머니 곁에 가서 슬쩍 옆에 앉았다. 역시 자루에 바지락이 그득했다. 우리는 호미질은 하면서도 자꾸 할머니 쪽으로 힐끔거렸다. 초짜인 우리를 알아보고는 손짓으로 한 곳을 알려주었다. 고수가 찍어준 자리에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찾아가 앉았다. 호미질할 때마다 바지락이 나왔다. 진흙이 묻은 바지락은 돌멩이와 비슷해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팔이 아플 때쯤 되니 눈에 바지락이 익숙해졌다. 문제는 팔이 아니라 다리가 저려서 쪼그리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야 고수의 궁둥이에 얌전하게 붙어있던 의자가 와 닿았다. 첫날은 다리가 아파서 우리는 일찍 철수했다. 작은 양이었지만 맛은 끝내주었다. 손톱 크기의 작은 바지락이라도 살이 올라 통통했다. 칼국수에 있던 바지락과는 다른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짠 바닷물 먹고 자란 바지락이 달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진달래꽃 필 때 바지락이 가장 맛있다는 할머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갓 삶은 바지락에 소주 한잔이 갯벌에서 안고 온 근육통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 맛에 우리는 갯벌을 주말농장 가듯 찾아갔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도비도항 갯벌이다. 섬이 아니라서 배를 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의 겉모습은 고수를 닮아간다. 서부영화 속 총잡이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갯벌에서 많이 놀아본 사람처럼 엉덩이에 빨간 의자까지 차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이젠 바지락도 눈에 잘 들어온다. 팔이 아플 때가 되면 호미질은 남편이 하고 나는 바지락을 주워 담는다. 남편과 나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6년 동안 주말부부였던 우리는 바지락을 캐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 결국, 당진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 사귄 친구가 남편이다.

밀려 나갔던 물이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조잘대는 참새 떼가 몰려오는 것 같다. 호미질로 생긴 고랑을 따라 들어오는 파도가 엉덩이 밑에서 찰방거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만 한다. 갯벌의 또 다른 매력은 멈출 때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더 캐고 심은 마음, 욕심을 부리면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갈 때마다 바지락을 내어주는 갯벌이 봉지마다 먹을 것을 담아주는 친정엄마 같아 푸근하다. 그런 갯벌이 있는 당진이 이제는 고향처럼 익숙해져간다.  

※포항 출신인 박은주 씨는 2년 째 당진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우두동에 살고 있으며 삼남매 자녀를 둔 엄마이다. 또한 북키스 독서토론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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