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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 입력 2000.07.10 00:00
  • 수정 2017.08.09 10:48
  • 호수 330

김은수 본지 편집위원이 추천하는 <새로 쓰는 백제사>
충격 속에 넓어지는 안목과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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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보면 행복해진다

김은수 / 본지 편집위원, 바이더웨이 대표

‘백제’에 사는 우리도 놀랄 광대한 이야기
충격 속에 넓어지는 안목과 역사인식

새로 쓰는 '백제사'

이도학 지음 / 푸른역사 펴냄 / 23,000원

인류의 역사란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소중한 삶이 모아져 이룩된 것이다.
특히 고대사에 있어서의 동북아는 인구이동의 최종 기착지 역할을 했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민족적 갈등으로 인한 부침이 쉼없이 진행되고 국가적 체제를 갖추는 시연장이었다 할만큼 수백개의 집단들이 형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했던 곳이다.
환인과 환웅시대 우리 민족의 한 분파였으나 단군시대를 거쳐 삼국이 재건되고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가 재건될 때까지 융성하지 못하고 스러져간 선비나 말갈, 그리고 나중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여진등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는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 22개 담로(식민지 국왕?)를 두어 대제국의 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백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한 <새로 쓰는 백제사 designtimesp=32499>를 소개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일부 왜곡된 역사를 배워왔던 우리들로서는 일부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들도 있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과 인식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우선 1부에서 백제는 어떠한 나라인가를 시작으로 그 전개과정, 위치, 세력권, 각종 기록들과 백제인들, 생활상과 문화, 그리고 마지막, 7부 백제의 미스테리중 알 수 없는 백제의 부활까지 600여쪽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그중 특이한 것 몇가지를 소개하면 첫째는 ‘재만 백제설’이다. 여러 종류의 중국역사서에 보면 4세기 중엽 이전에 백제가 만주방면에 소재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지금의 서울지역에 만주 지역의 묘제인 적석총이 등장하는 시기를 4세기말로 간주하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둘째 ‘부여계승 의지의 발현’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끊임없는 충돌의 근원을 씨족원, 즉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온조와 주몽을 각각 시조로 설정하고 있지만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을 제사 지내는 사당을 양국 모두 갖추고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 모두 부여에서 분화된 세력에 의해 건국되었으므로 이 사당은 그 친족집단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사당은 국가에서 관장하게 마련이고 한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풍속과 습성, 성씨가 모두 같으므로 한나라로 통합되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는 ‘백제의 교역망은 어디까지였는가’이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교역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도지나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던 해양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필리핀인들을 고대에는 흑치인들이라 불렀는데 훗날 백제의 부흥운동에 참여했던 흑치상지는 바로 필리핀의 어느 한 곳이나 상권을 흑치라는 성과 함께 식읍으로 받은 것이다.
이책에는 여기서 소개한 내용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즈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역사를 인식하는데 있어 ‘정론’이란 있을 수 없다. 즉, 역사는 이것이다가 아닌 이럴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백제사의 경우는 잃어버린 왕국이라 지칭할만큼 참고할만한 문헌이나 유물, 그리고 금석물이 드물기 때문에 섣부른 추론으로는 역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누를 범할 뿐이다. 이런 생각으로 이 책을 대한다면 보시는 분들의 역사인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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