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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안중근의사를 기억하며

당진시대l승인2017.02.07 17:28l(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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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6발의 총성과 함께 “코레아 우라”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토히로부미가 쓰러지고 안중근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일본인들에 의한 재판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그 다음 해인 1910년 2월 14일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제국주의를 쏜 안중근

의거 직후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의 사살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체포의 길을 선택한다. 국제법에 의한 재판을 통해 대한제국의 독립의지와 평화의 대한 염원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여겼던 안중근 의사는 일본 관할 재판장, 일본인 변호사, 일본인으로 가득 찬 방청객들이 모인 조작된 재판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이토히로부미의 죄목은 안중근 의사에 의해 하나하나 낱낱이 밝혀졌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을 강제 폐위한 죄, 을사늑약과 정미 7조약을 체결한 죄,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한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등 15가지의 죄목을 들었다.

수사기록에서도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한 것을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결행한 것이며,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이는 제국주의에 맞선 평화를 위한 의병활동임을 알 수 있다.

 

옥중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 선고 소식을 듣고 옥중 아들에게 편지와 수의를 직접 지어보낸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한 일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호 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안중근의사는 어머니가 지으신 수의를 입고 1910년 3월 26일 죽음 후 시신을 광복된 조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한다.

 

돌아오지 못한 유해, 그가 남긴 정신

100년에 넘은 시간이 흘렀지만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꿈꾼 동양의 평화도 이뤄내지 못했다. 우린 역사 속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2월의 그날, 그의 정신과 그의 유언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계성초 3학년 이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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