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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 분단의 씨앗이 되다

당진시대l승인2017.02.07 17:29l(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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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아시나요

판도라는 헤파이토스가 만든 여자다. 신들은 그녀에게 모든 선물을 주었지만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고 갈 호기심도 줬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작은 상자를 주었는데 상자 안의 내용이 궁금했던 판도라는 그만 열어 보고 만다. 상자 속에서 온갖 불행한 재앙들이 빠져나오게 되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고통과 아픔을 겪게 되었다는 신화의 이야기다.

 

얄타회담도 그러했다

작은 상자의 일이었지만 열어보고 나니 하나의 나라를 70년이 지나도록 둘로 나뉘게 만든 일의 시작이 된 것이다. 얄타회담은 독일의 항복이 눈앞에 보이자 1945년 2월 4일부터 2월 11일까지 소련의 크림반도에 위치한 얄타에서 미국, 영국의 총리, 소련의 수뇌자들이 모여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전후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이다. 회담의 장소가 소련의 영토였기 때문에 회담의 결과는 소련에 유리할 전망이었으며,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소련에 대해 양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왜냐하면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의 참전은 늦어졌고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뒤 일본은 항복한다.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한 지 7일만의 일이었다.

 

38도선으로 갈라진 한반도

얄타회담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독립 문제를 논의했는데 당장 독립시키지 않고 일정기간 동안 신탁통치를 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나라가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마음대로 결정되면서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는 씨앗이 된다.

일본이 항복 방송을 하는 그 순간 젊은 미군 두 사람이 한반도 지도를 놓고 고민을 한다. 미군이 통치할 지역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한반도 중간을 가로지르는 38도선을 선택했다. ‘서울을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 넣을 수 있다’는 이유로 38도선을 선택했던 것이다. 38도선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보초가 서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입장이 부딪치고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38도선은 민족을 갈라놓는 분단선이 되었다.

 

“대한독립만세”에서 “하나의 대한민국만세”로

신화에서는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에 불행과 교통을 다시 담을 수 없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다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식민지 35년 동안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뿌리 깊은 한 민족으로 하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언젠가 이루어질 하나의 대한민국 통일을 희망해 본다.

 

계성초 4학년 성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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