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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 일본에서 온 고사카 루미꼬 씨(순성면 봉소리)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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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상 떠난 남편…나를 일으켜 세운 ‘꿈
원패밀리 다문화센터 등에서 봉사활동 열심

일본 나가사키 출신의 루미꼬 씨가 한국에 온 건 지난 2002년이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낯선 당진에 정착했다. 결혼생활 7년 만에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두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커다란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그가 꿋꿋하고 씩씩하게 당진에 살고 있는 건, 어릴 적부터 이미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던 그의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여성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그를 지금껏 버티게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꿈을 하나씩 이뤄가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팅게일 꿈꾸던 간호사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 시작은 간호사였다. 나이팅게일과 마더 테레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는 나고야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자기 자신이 소진되는 것을 느꼈다. 환자들이 마음속 고민들을 루미꼬 씨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지만 루미꼬 씨 자신은 정작 어려움을 털어놓을 곳을 찾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사람으로 인해 루미꼬 씨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의 제안으로 교회에 다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키가 훤칠했던 남편은 성격이 밝아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2009년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땐 너무 당황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는데,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죠. 특히 교회 분들이 서울 장례식장까지 매일 달려와 줄 정도로 가족처럼 챙겨줬어요. 그 모습에 시댁 식구들이 감동할 정도였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 없이 두 아이를 기르며 살아갈 앞날이 막막했다. 당시 유치원과 학원 등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고 있었지만, 생계를 책임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관공서를 찾아갔다. 어렵사리 사정을 털어놓았지만 당시 담당직원은 “그냥 일이나 구하세요”라고 차갑게 말했다. 루미꼬 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냥 일본으로 돌아가란 얘기로 들렸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다문화가정, 도움을 주는 존재로

마음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던 그때, 그는 다시 꿈을 생각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던 어릴 적 마음이 떠올랐다. 루미꼬 씨는 “무척 힘들었지만 다시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루미꼬 씨는 사회복지과 자격증과 일본어교육 자격증을 따고, 학교·학원·기업의 강사로, 또 당진시 배달강좌 강사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 강의 요청이 오면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루미꼬 씨는 바쁜 일정을 쪼개 원패밀리 다문화센터에서 봉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과 같이 낯선 한국 땅에 와 정착한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당진시립요양원과 효제요양원 등 노인복지기관을 찾아 춤과 노래로 어르신들에게 기쁨을 주고, 외롭지 않게 서로를 위로한다.

“원패밀리 다문화센터라는 이름 자체가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다문화가정이 도움을 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됐으면 해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껴요.”

봉사활동을 할수록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는 루미꼬 씨는 원패밀리 다문화센터의 문화예술 봉사활동을 통해 이주여성들이 집밖으로 나와 낯선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단다.

당진 소녀상 건립에도 함께

그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당진사람들의 따뜻함 때문이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시댁에서는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자고도 했다. 하지만 당진사람들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고향과 닮은 당진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루미꼬 씨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목표”라며 “또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이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루미꼬 씨는 3.1절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역사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무척 안타까워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일본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아 전혀 몰랐다가, 교회를 통해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 알게 된 그는 당진에 살고 있는 일본인 33명과 함께 당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도 참여했다.

“소녀상 앞에 세워진 후원인 명단에 일본인으로서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죄송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우리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신 당진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일본인들이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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