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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0 23:32
  • 호수 1149

왜목마을 발전에 함께한 김종득 씨(석문면 교로2리)
“내 고향 바다에 평생을 바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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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패러글라이딩·윈드서핑·승마 등 섭렵
낚시터 운영하며 해 뜨는 마을 알려
김승진 선장에게 요트 세계일주 왜목마을 제안

 

갓 제대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의 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됐다. 찾는 이 거의 없던 작은 어촌마을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바다를 꿈꾸던 청년은 이제 중년의 나이를 넘어섰다.

‘해뜨는 포구 왜목마을’

왜목마을 해변에서 썬라이즈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득 씨가 고향을 찾은 건 제대한 뒤다. 양복을 만드는 재단일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다시 고향 바다로 돌아왔다.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청년은 동해안 못지않게 서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고향이 해가 뜨는 유일한 서해안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왜목마을에서 낚시터를 운영하면서 구명조끼에 ‘해 뜨는 포구 왜목마을’이라고 새겨, 나름대로 왜목마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왜목마을 입구에 로드간판을 세우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까 매일매일 궁리했다. 그렇게 낚시터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왜목마을 해돋이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작은 어촌마을일 뿐이었던 왜목마을에 사직 찍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서해안에서 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했지만, 촛대바위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해가 뜨는 위치는 계속 달라지는데, 김종득 사장은 “촛대바위 위로 뜨는 해를 보려면 11월 14~15일 경부터 2월 20일 사이가 가장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해돋이를 바라보는 위치도 날마다 다르다고.

“해는 희망과 꿈을 상징하잖아요. 촛대바위 일출은 기가 막히죠. 특히 서해의 해돋이는 동해바다와 다르게 해가 더 크게 보이죠.”

그렇게 입소문을 타면서 다양한 언론에 왜목마을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숙박업소와 식당 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 1월 1일 이른바 밀레니엄 해맞이를 앞두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물밀듯이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 씨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해가 뜨기 직전까지 김 씨는 목청껏 외쳤다. “저쪽 선착장으로 가시면 더 멋진 해돋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김종득 씨에겐 그날의 기억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단다. 고향을 알리고 싶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누구 하나의 힘으로 된 게 아니에요. 주민,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 모두가 이뤄낸 기적이었어요. 굴 따는 아주머니 조차 왜목마을을 이렇게 알리는데 한 몫 했어요. 그렇게 모든 사람이 애쓴 결과 이제 왜목마을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지가 됐고, 당진시민들의 휴식처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진 선장을 만나다

김종득 씨는 바다에서 살아온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다에 나가면 시계를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물시계를 만들어 시간을 가늠했다. 아버지 덕분인지 김종득 씨 역시 관찰하고, 실험하고,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소형발전기를 만들어서 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는 군마 관리사로 일하면서 말 타는 것을 배웠고, 낚시터를 운영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 덕분에 윈드서핑도 배웠다. 바람을 타다보니 패러글라이딩까지 섭렵해 당진 최초로 패러글라이딩 협회를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손으로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기류와 기상, 유체공학에 대해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언젠가는 꼭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단다.

요트 역시 일찌감치 접했다. 요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부산 수영만 요트계류장이나 한강마리나 등에 수도 없이 다녔다. 그러다 통영리조트에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김승진 선장이다. 당시 요트를 수리하고 있던 김 선장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내 마음이 통했다. 김 선장은 문득 김종득 씨에게 “오랫동안 꿈꾸던 요트 세계일주를 이제는 떠나야 겠다”며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의 얘길 듣자마자 “그럼 당진 왜목마을에서 하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희망항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지자체장이었던 이철환 전 당진시장과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졌고, 대화를 나눈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를 왜목마을에서 하자고 뜻을 모았다.

“김승진 선장이 요트 세계일주를 성공하고 돌아온 일이 가장 기쁜 일이었죠. 배를 타다 보니 작은 풍랑조차도 힘들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런데 폭풍을 지나면서도 7개월 만에 완주한 김 선장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죠. 작은 인연이 이렇게 큰일을 이뤄낼 줄은 몰랐어요.”

김종득 씨는 왜목마을에 요트 세계일주 기념관을 세우고, 마리나가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곳에서 요트아카데미가 운영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왜목마을이 활성화 될 것이라며 “사치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요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요트를 즐기는 ‘요트 시대’가 빨리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계속 네 길을 이어가라”

한때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작은 어촌마을을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동분서주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객지에서 실패하고 내려와 미친 짓 한다”며 뒷통수에 대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 무렵 한 마을 어르신이 “실망하지 말고 계속 네 길을 이어가라”고 했던 말을 김 씨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말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왜목마을을 해운대 버금가는 해수욕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젊을 때 바다 3000평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면 바다에 평생을 바치리라 마음먹었어요. 지금은 한 500평 정도 쓰고 있네요. 앞으로 꿈은 바다목장을 조성하는 것이에요. 물고기를 잡는 시대를 넘어서, 바다를 개간해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싶어요. 바다가 우리 후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면 잘 가꾸어서, 무궁무진한 꿈의 무대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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