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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드러낸 뼈저린 삶의 서술 <진실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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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드러낸 뼈저린 삶의 서술 <진실을 노래하라>

백마강 변 움막 속 / 지친 몸 누워 / 허공을 바라보니 /천정 속에 하늘이라

어젯밤엔 빗방울이 / 들렀다 가더니 / 오늘 밤은 별들이 / 밤마실 하자 찾아드네

휘영청 밝은 달빛 철탑 위에 / 부엉이 구슬피 울어 / 이 몸 실은 인생 열차 / 어디로 가고 있나 - 철탑 위 부엉이

저자인 전숙자 시인(충남 서천군 시초면 선동리 출생)은 백마강에 세 번이나 몸을 던졌다. 강제 결혼 때, 삶에 지쳐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 연좌제로 가족들이 피해를 볼 때였다.

시인이 첫 돌이 막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이 걷는 걸 보겠다고 집에 들렀다가 경찰에 잡혀갔다. 아버지는 6.25 한국 전쟁이 터지자 동생을 피신시켰다는 이유로 부역자로 몰려 대전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살해됐다.

끌려가는 아들을 붙잡던 시인의 할머니는 경찰과 우익단체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 일로 일급 청각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징용에 끌려간 큰 고모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시인의 네 살 위 오빠는 우익단체 사람들에게 독살당했다. 전씨의 작은아버지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월북했다.

연좌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막내 삼촌은 세상을 한탄하며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과 등졌다. 전씨의 할아버지는 거듭된 충격으로 끝내 정신을 놓으셨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쟤네 아버지는 빨갱이'라며 꺼렸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정치 사회적 생명이 끊기고 가족을 잃은 시인이 번번이 백마강에 몸을 던진 연유다.

그런 그가 재심을 신청해 지난 2014년 아버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그이 나이 예순 일곱 때였다.

이번엔 칠십의 나이에 시집 <진실을 노래하라>(288쪽)를 내놓았다.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 놓은 삶의 곡절을 이야기로 노래로 담았다.

특별히 시를 쓰겠다고 쓴 글이 아니다. 시인이 한글을 깨친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처럼 써 놓았던 삶의 기록을 엮었다. 시어로 드러난 삶의 상처는 역사의 흔적으로 살아나 읽는 이들의 가슴을 찌른다. 눈물샘을 터트린다.

그는 민간인 희생자위령제 때마다 전국을 누비며 자신이 쓴 시로 유가족과 영혼을 위로해 왔다. 시집에는 여러 해 동안 사건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눈 참여시를 함께 실었다.

역사학자인 이이화씨는 추천사에서 "민족 서사시이자 인권을 추구한 시어"라며 "이 시집이 우리의 심금을 울려 인권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개인의 역사가 아닌 수십만 전쟁 희생자 유족들의 통한을 담아낸 대하소설이고 70년 한국 현대사의 뼈저린 서술"이라고 평했다.

책을 펴낸 금정굴 인권평화연구소는 "피해자인 유족 스스로 말하는 이야기를 직접 만날 기회"라며 "고문, 대량 학살, 실종이라는 국가 범죄로 그 후손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금정굴 인권평화연구소는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을 토대로 국가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의도성을 규명하는 책을 연이어 펴내고 있다. <전쟁범죄>(신기철)와 유족 100명을 인터뷰한 <멈춘시간1950>(신기철), 판결문 등 국가기록물과 증언을 통해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한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신기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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