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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플라시보 정치와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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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는 라틴어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주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의 상태가 실제로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위약과 관련된 심리 현상 중 하나이기에 위약 효과 또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약이 부족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플라시보 효과는 정치 현장에서도 그 효력을 확인할 수 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가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해 정치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박근혜 탄핵과 대선을 앞둔 요즘 거의 대부분의 뉴스들은 본질 없는 정치쇼에 매몰되어 있다. 그래서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하는 정치 뉴스들은 예능 프로그램 이상으로 황당무계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이며 때로는 웃음까지 자아내고 있다.

이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미디어의 룰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더없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유능함은 여·야 또는 보수·진보를 구분할 필요 없이 매한가지다. 대통령 탄핵 후,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는 이들은 향후 국민 대통합과 정권 교체를 주장하며 대선 준비에 한창이다. 그런데 이러한 처사는 촛불 민심을 왜곡하는 정치적 쇼다. 왜냐하면 성난 민심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선구호로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탄핵과 함께 촛불을 멈추고, 이제 통합과 교체를 준비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촛불과 탄핵이라는 혼란은 마치 서둘러 종료되어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그리고 혼란의 결과는 대국민적 통합을 통한 정권교체, 즉 박근혜의 사람들에서 문재인의 사람들 또는 안철수의 사람들로 바꿔야 하는 당위성으로만 귀결된다. 촛불은 민심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민심, 즉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점증하는 세계화에서 고통 받는 대중들 그리고 자본주의 계급간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민심의 촛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느 누구도 촛불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없다. 왜냐하면 문제의 핵심인 사회적 구조를 모르던가, 아니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치쇼가 통하는 건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그리고 대안언론들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한가지다. 언론과 정치권은 촛불 집회에 모인 대중들의 요구를 박근혜 탄핵으로 한정시켰고, 탄핵 후 민심의 성공으로 일괄 평가했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는지 아무도 논하려 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플라시보 효과는 대선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노무현 길라잡이’이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후보자들이 자신의 철학과 정치적 견해보다, 노무현 이미지를 통해 표를 구걸하고 있다. 또 반대 세력은 노무현을 폄하해 자신들의 세를 유지, 확장하는 쇼가 한창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을 위한 스스로의 이미지 작업에서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잠시 잠깐, 저들의 본색을 알 수 있는 찰나가 있다. 바로 당내 경선에서 진행되는 상호 간의 이전투구가 제격이다. 보수건, 진보건 자신들의 정치적 담론보다 이미지와 색깔에 의존해 권력을 탐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의미한 정권교체이다.

플라시보 효과의 결정판은 역시 박근혜의 언행이다. 지금의 대선 정국에서 노사모라는 이미지 정치가 재등장했다면, 박근혜를 축으로 하는 박사모의 결집 세력과 그 추종자들 또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더욱더 복잡한 정치쇼를 조장하고 있다. 플라시보 약물에 중독된 이들의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를 정치공학으로 활용하는 정치집단도 문제지만,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사회, 더불어 무비판적 사고로 정치쇼를 흡입하는 수용자들의 미디어 이용 습관이 지적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가짜 약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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