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출향인을 만나다 문헌일 재경당진시향우회장(문엔지니어링 대표, 우강면 창리 출신)
우강 소년, 한국의 IT산업을 이끌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정부부터 역대 대통령 표창 수상
어린 시절 가난 딛고 일어서 자수성가

 

학비를 벌기 위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2원50전의 차비를 아끼려고 먼 길을 걸어 다녔던 까까머리 소년이 어느덧 정보통신 엔지니어링업계의 대부가 됐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딛고 일어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면 고향과 가족들의 그 따뜻한 품이 삶의 자양분이 된 것 같다.

한국 지식기반산업 주도

문헌일 재경당진시향우회장은 정보통신 엔지니어링 업계 중 IT/ICT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기업 문엔지니어링을 운영하고 있다. 문엔지니어링은 정보통신 및 정보시스템 컨설팅과 설계, 감리·감독 등을 맡고 있으며, 정보통신 박사부터 기술사, 특급기술자 등 300여 명의 직원이 몸담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특히 더욱 고도화된 IT/ICT 기술이 요구되는 요즘에는 이를 활용한 사회안전망, 도로교통망시스템 구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문엔지니어링에서는 공항·철도 등 공공시설 및 민간기업의 정보통신 사업과 중국을 비롯해 해외 15국에서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각종 국책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문 회장은 정보통신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 문엔지니어링을 창립해 대표적인 IT/ICT 기업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엔지니어링 산업을 주도해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배달

문 회장은 풍요로운 소들강문 우강평야를 중심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배 사업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 긴 투병생활을 이어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7남매 중 여섯 째인 문 회장은 당시 공무원이었던 큰형님을 따라 서울 용산으로 올라왔고, 엄마처럼 큰형수를 따르며 그 보살핌 속에서 성장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지난 1960년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형님에게 얹혀사는 게 미안해 조금이나마 학비에 도움이 되고자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작은 몸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신문을 돌렸다. 당시 달동네 판자촌부터 부잣집 동네까지 신문배달 일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한 겨울에 언 손을 녹여가며 신문을 돌리고 있으면, 이따금씩 부잣집 사람들이 털실로 장갑을 떠서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받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신문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어느 가난한 동네에 살던 할아버지가 신문대금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차마 신문을 끊을 수 없어 공짜로 신문을 넣어주기도 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 오기 전 고향에선 줄곳 골목대장 노릇을 했었는데, 당시 동네사람들이 놀리고 괴롭히던 소아마비 친구를 옆에서 감싸주던 문 회장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굴하지 않는 의지와 자립심을 기를 수 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땀과 눈물의 결실 대통령 표창 

한편 문헌일 회장이 정보통신 분야를 다루게 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원양어선을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기에 큰 배를 타려고 공립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 통신을 전공했다. 그러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형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철도청(지금의 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해 전공을 살려 통신관련 일을 했다. 10여 년 간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자산으로 미국 최대 정보통신 기업 벡텔사의 국내 합작회사에 스카우트돼 본격적으로 정보통신 엔지니어링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90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문엔지니어링을 창업, 한국의 정보통신 엔지니어링 업계를 이끌고 있다.

문 회장은 “엔지니어링 산업은 지식과 기술을 접목시켜 부가가치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선도하는 지식기반·지식집약형 산업”이라며 “일을 하면서 전문지식이 중요해 중단했던 학업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을 거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문헌일 회장은 지난 20년 간 역대 정권에서 모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평생에 대통령상을 한 번 받기도 쉽지 않은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산업포장을, 이명박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웅비장 수훈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이다.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보람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들판 뛰어다니며 놀던 시절

한편 어린 시절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당진은 문 회장에게 애틋한 곳이다. 부모님을 모신 산소도 고향인 우강면 창리에 자리 잡고 있고, 두 살 터울의 막내동생(문수일)도 여전히 우강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고향에 자주 내려오고 있다.

“겨울이 되면 친구들과 논에서 썰매타고 놀던 일, 논두렁에서 쥐불놀이를 하던 일, 또 개울에서 쌀붕어와 미꾸라지를 잡던 일들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옛 추억을 되새길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유년시절 고향의 모습이죠.”

타지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고향이지만 최근 도계분쟁 및 발전소·송전선로 문제 등 지역의 현안들을 접하며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석문산단 등 침체된 지역경제 등 국가의 여러 정책에서 당진이 소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걱정은 비단 문 회장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재경당진시향우회를 통해 출향인들과 함께 고향 발전을 고민하고, 기지시줄다리 민속축제 등 지역행사에도 참여 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헌일 회장은 “올해 재경당진시향우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면서 “새롭게 조직을 재정비하고, 당진 발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당진발전연구위원회를 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진 출신의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자문 역할을 할 방침”이라며 “고향이 발전하는데 미력하나마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문헌일 회장은
-1953년 우강면 창리 출생
-문엔지니어링 회장/공학박사
-재경당진시향우회 제18대 회장
-구로구(을) 충청향우회 제6대 회장
-민주평통 제15·16기 상임위원
-전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 총동창회 회장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제15·16대 회장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