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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04.24 10:44
  • 호수 1155

[칼럼] 채금남 시인 / 합덕읍 교동식당 대표
우리동네 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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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푸르름, 굽이굽이 들풀 사이로 뒤채이는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 한 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만져준다.

넓은 논들이 쎄레질로 말끔히 다듬어져 가고 농부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풍년을 꿈꾸는 기다림에 농부의 가슴은 풍성한 마음으로 강물처럼 출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늘 풍요로운 가을 한복판에서 만세를 부르고픈 소망의 마음은 늘 기쁜 것이다.

봄이 되면 새벽부터 꿈틀거리는 농부의 가슴, 논으로 밭으로 달려가고 싶은 촌로의 작은 소망, 풀들이 파랗게 움터 오르면 싱그럽고 풋풋한 풀 내음이 가득한 논둑 위로 오른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커다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출렁출렁 넘치도록 담아 논둑에 놓고, 둑 사이 자욱하게 핀 토끼풀을 따서 꽃반지 끼고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찾아 헤매이던 시절은 누구나 한 번씩은 있지 않은가.

하루종일 헤매이다 찾은 네잎클로버 한 장. 햇빛에 바싹 말려 책갈피에 넣고 어설픈 시 하나적어서 고이고이 간직하던 그 추억. 봄이면 또 그 행운 하나 찾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면 좋은데 감성도, 어린시절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았나 꽃잎 날리면 눈물 한 방울 떨구려나.

밟히고 밟혀도 쓰러지지 않는 질경이 들풀 속에서 강한 인내로 견디면서도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작은 행복으로 꽃을 피우는데 우리는 작은 행복은 잘 모르고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농부들의 소박한 바람은 정성들여 지은 쌀이 우리네 식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소비해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바라는 소박하고 작은 소망 하나인데 우린 늘 많은 것을 꿈꾸고 산다. 더 많이 더 멀리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허둥대는 헌실 들판 속에 산다.

저 멀리 머리에 새참을 이고 오시던 어머니 구수한 보리개떡과 쑥향 가득한 새파란 쑥개떡 한 조각 얻어먹고 싶어 군침 흘리던 때도 있었는데,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전화만 하면 달려와 주는 간식 등에 입맛이 길들어 우리의 향토음식인 된장, 고추장 도 싫어하고 김치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요즘 시골 들녘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머니의 모습 대신 요즘은 오토바이의 빠른 배달이 구수한 점심을 논둑에 펼쳐놓고 있으니 우리는 늘 바쁜 세상에서 빠르게 변화된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논둑길로 걷다가 노랗게 피어 나를 유혹하는 가녀린 꽃의 흔들림, 봄빛에 눈이 호강한다. 듬성듬성 피어있는 장다리 꽃대 하나 꺾어 먹어본다. 아무 맛은 없어도 봄 내음이 가득 입안으로 번져 나를 깨우고 있었다. 손등 위로 폴짝 뛰어오른 청개구리 한 마리는 뻐끔거리는 눈망울을 굴리면서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비가 오면 어머니를 개울에 묻어놓고 무덤 떠내려갈까 슬피 울것이다.

나도 아마 저 청개구리 같은 어릴적 말 안 듣던 철부지 아이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논둑 위에 무수히 출렁대는 개망초들의 꽃 내음이 향기롭다. 봄이면 나물 무쳐서 모내기하는 들 참으로 술 안주했던 기억도 아스라하다. 이제 서서히 봄이 가고 초여름의 문턱으로 빠르게 달린다. 여름의 진초록 들판에서 우리는 오늘도 가슴에 푸르고 푸른 희망 한 가닥씩 찾아서 아름다운 빛깔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 바쁜 세상에서 살다보니 하늘 한번 바라볼 시간조차 없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잠깐 세월이 흐른 것 같은데 어느새 서산에 해가 지고 있는 걸 보니 아이들은 훌쩍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작은 아이 한 명, 두 명 매달려 있는데 저 아이가 내가 어릴 적 부모님 손에 매달려 가던 내 모습이 아닌던가. 이제는 잠시 천천히 숨을 쉬어보면 어떨까.

세상이 너무 빠르다고 삶에 녹초가 되어서 힘들다고 투정하다보면 늘 힘들지만 들판에서 푸르게 변해가는 벼 포기가 저절로 자란듯 한 들풀의 꿋꿋함을 생각하면 겨울의 힘겨운 투쟁으로 흙을 밀치고 나온 생명력, 그 꿋꿋함. 생각하면 우리의 삶도 힘이 생길 것이다. 나는 씩씩하다. 힘들 때마다 나에게 주문을 걸어보는 나만의 비법을 왼다. 그러면 힘들다가도 힘이 난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많이 하려고 한다.

미나리 소복소복 올라온 싹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성큼성큼 다가오는 뜨거운 햇살 한 자락, 치마 폭에 안고 이렇게 봄을 보내고 있다. 봄이 가면 우리는 조금씩 영글어가 듯 그렇게 곡식도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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