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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05.05 19:12
  • 호수 1157

[독자투고]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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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 세세토록 지속될 것 같은 부귀영화도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비유한 말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꽃피고 지는 일이 잠시라 생의 무상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열흘 이상 버티는 붉은 꽃이 없다는 것이다. 혼탁한 이 세상을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던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얼마 전만해도 목련과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부시게 꽃을 피웠다. 그런데 봄비도 내리고, 세월이 가자 꽃잎들은 모두 지고, 연한 녹색을 띤 새순들이 나왔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일근 시인은 무량수전 앞에서 이렇게 시를 읊었다고 한다.

어디 한량없는 목숨이 있나요/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 이지요/ 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무량수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여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빡 할 사이에 피었다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이다 지는 초저녁 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거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그래서 시인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바라보며 무량수를 사는 것은 지겨운 일이며, 무량수를  잠시 왔다가는 것이라고 읊었나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임을 알면서도 나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사랑 할 수가 없어 쓸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영원성을 꿈꾸면서 나만의 순수한 언어를 낳고 싶다. 꽃들의 화려한 잔치 같던 산야에 봄꽃들이 지고 나니, 베란다 창가에 군자란이 다소곳이 고개를 내밀며 꽃봉오리를 열고 있다.

우주의 그 작은 것이 기운을 끌어당기며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니 바라보는 기쁨 또한 힘이 생긴다. 그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한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라는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그런 사람도, 이 세상을 지배하던 그런 사람도 다 때가 되니 가고 잊혀 진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별난 사람도 세월 앞엔 약자이고, 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무하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 할 수없는 절대 가치를 지닌 것이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잎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했다. 잠시 머무는 세상 사람들과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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