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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천웅지·예소은 부부(채운동)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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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받은 임금 15만7000원, 희망을 보다
오는 29일 북한이탈주민 부부 세 쌍 결혼

15만 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야 했다. 하지만 당진에 온 첫 날, 부부가 하루 일 해 번 돈이 15만 원이었다. 북에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15만 원이 이곳에서는 하루 만에 벌 수 있는 돈이었다. 비록 힘들지언정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 서러움과 함께 희망이 차올랐다. 천웅지 씨는 “15만 원이 이 땅에 대한 인식을 바뀌게 해 줬다”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노력하면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은 배짱이 생겼다”고 말했다.

“감자라도 배불리 먹고 살았다면”
채운동 천웅지·예소은 부부는 열심히 살기로 자타가 공인한다. 노력하는 모습을 응원하며 그들에게 발이 될 수 있는 중고 자동차를 주고, 소은 씨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주기도 한다. 천웅지·예소은 부부는 북에서 넘어온 북한이탈주민이다. 그들이 애초부터 탈북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감자라도 배불리 먹고 살았다면 국경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은 씨는 말했다. 하지만 흙먼지가 뒤덮인 쌀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을 오가야 했고, 그날 역시 급하게 필요한 15만 원 때문에 중국으로 향했다. 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그렇게 그 날도 압록강을 건넜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유가 허용된 나라
이들은 수개월 간 중국에서 숨어 지냈다. 북에서는 한국을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부르며 미국과 중국보다도 더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중국 땅에서 하나님을 알게 됐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란 허용되지 않은 북한에서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그들에게 종교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천 씨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당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참 살기 어려운 곳이라고만 알았다. 돈 없는 서민에게는 더더욱 척박한 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당진 땅을 밟은 뒤 새로운 세상의 연속이었다. 종교와 사상, 표현이 자유롭고 더구나 노숙자에게도 밥 한 술 떠주는 복지제도가 있었다. 감시가 심한 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감시 때문에 길에서 쪽잠을 잘 수도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가재처럼 익은 남편
당진에 정착해 처음으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아내 소은 씨는 청소 일을, 남편 웅지 씨는 자전거 도로 울타리 작업을 맡았다. 지난해 7월 무더위가 심한 날이었다. 그 날 땡볕에서 하루 종일 작업한 웅지 씨는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귀가했다. 소은 씨는 “남편이 볕에 너무 익어 마치 빨간 가재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 웅지 씨는 8만7000원을, 소은 씨는 7만 원을 벌었다. 총 15만7000원이었다. 15만 원 때문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만 했는데 이곳에서는 하루 일당이었다. 살이 익어도, 하루 종일 노동으로 인해 지쳐도 행복했단다.

목숨만큼 원하는 ‘통일’
부부는 특수용접을 배우기로 하고 자전거를 구해 3개월 간 매일같이 당진과 서산을 오갔다. 첫 눈이 내렸던 지난 1월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아내 소은 씨가 넘어지기도 했다. 그것 마저도 행복했던 부부는 소복이 쌓인 눈에 누워 팔로 천사 모양을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노력 끝에 수료증을 받은 소은 씨는 “스스로가 너무 당당하고 뿌듯했다”며 “나도 이제 대한민국에서 정착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부부는 2017 당진시 산업인력양성 전문교육을 배우고 있다.

“저희에게는 통일은 목숨만큼이나 원하는 것이에요. 사상과 제도가 너무도 다른 남과 북이지만 서로 보살피고 먹여 주는 ‘사랑’이 있다면 통일은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통일이 된다면 저희가 배운 특수용접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꿈에 그리던 웨딩드레스”
한편 그들에게도 꿈이 생겼다.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10년이 됐지만 북에서 결혼식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웅지 씨는 “한 끼가 귀한 북에서는 예식을 치를 생각도 못한다”며 “1년에 단 하루인 생일 때도 두붓국에 고기 몇 점 넣어 막걸리와 먹는 것이 전부일 정도”라고 말했다.

당진에서 살며 지인의 집에 방문한 소은 씨 눈에 유독 들어오는 것이 결혼식 사진이었다. 소은 씨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소은 씨는 남편에게 “웨딩사진이라도 찍자”고 말했고 남편은 바로 “우리도 결혼식은 하자”고 답했단다. 웅지 씨는 “부부의 인생이 합쳐지는 예식이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살기 어려워 잊은 채 왔다”며 “하지만 지금은 나도 노력하면 결혼식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망을 들은 당진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센터장 문정숙)는 웅지·소은 부부를 비롯해 2쌍의 부부를 위한 합동결혼식을 오는 29일 개최할 예정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노력한 만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지만 때로는 탈북민이라는 손가락질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단다. 천 씨는 “한 번은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가서 인사를 하고 공무원에게 질문을 했다”며 “그때 공무원이 ‘오지 말라니깐, 이런 사람들이 어디서 굴러와서’라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무엇보다 공적인 일을 하는 공무원에게서 그 소리를 들으니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중에서는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도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좋게 봐주시고 이들에게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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