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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9 19:21
  • 수정 2017.05.22 11:11
  • 호수 1159

피아노 선율 따라 음악인의 길을 가다
세상사는 이야기 서울대 음대 출신 이재향 피아니스트
(수청동 더피아노스토리 음악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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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뿌리’ 정통 클래식 연주 고집
손 마비로 7년 간 암흑기 속에 깊어진 예술

 

인생의 모든 시간을 피아노 선율 속에 살았다. 다섯 살, 한글도 다 떼지 못했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말이다. 글보다 음악의 언어를 더 먼저 배운 셈이다. 사람들도 그의 연주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촉망받는 피아노 영재로 자랐다. 피아노 전공자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고 수석졸업까지 했다. 그런데 한창 꽃다웠던 20대 중반 무렵 손에 마비가 오고 나서야 알았다. 인생과 음악의 깊이를 말이다.

“전문 음악인을 키우고 싶어요”
이재향 씨는 천상 예술가다. 지난 2015년 당진시청 앞에 문을 연 더 피아노 스토리 음악학원에 10개의 레슨실을 설치하고 모두 그랜드피아노를 들여놨다. 게다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에게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려면 그냥 다른 곳을 찾는 게 나을 것”이라며 돌려보낼 정도다. 전문 예술가를 기르고 싶단다. 예술의 길은 그저 재미있고 행복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여정 속에서 예술의 가치와 철학을 심어주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또한 세계 공통의 언어인 음악을 통해 세계로 향하는 꿈과 비전을 키우고 싶단다.

“피아노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악기이면서도, 여느 악기보다 할수록 어려워요. 재능만으로는 부족하죠.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해요. 그 훈련을 해야 하죠. 그래서 삶의 활력을 주기 위한 취미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다른 악기를 권해요. 피아노 기술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진짜 음악인을 키우고 싶어요.”

음악과 피아노에 대한 자부심은 결코 그에겐 타협할 수 없는 대상이다. 대중음악에 밀려 클래식이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정통 클래식만을 연주한다. 물론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재즈나 퓨전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음악가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통 클래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적 뿌리가 흔들림 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향 씨는 “음악적 지식이 아무 것도 없어도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연주자의 마음을 알아차린다”며 “사람들이 클래식을 외면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클래식 연주자들이 대중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연주를 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7년 간의 긴 암흑기
대전이 고향인 그는 예산군청 과장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유치원을 가지 못하고 예산에 살게 됐다. 신기하게도 그 옛날 시골에 연세 지긋한 할머니 선생님이 운영하는 피아노학원이 있어 유치원 대신 다니게 됐다. 초등학생 때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피아노를 배웠다. 주변에서 재능이 있다고 해 5학년 때부터 전문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5살 가장 아름답고 음악적 재능을 꽃을 피울 나이에 그에게 손가락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일상을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손이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움직이질 않았다. 숱하게 병원을 찾아가도 신경·근육·뼈, 그 어느 곳에도 문제가 없었다. 손이 왜 말썽을 부리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을지 양방·한방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제야 비로소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7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으니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인생의 암흑기와도 같았는데 지금 뒤돌아 생각하니 나를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이었더라고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넘어서 음악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죠.”

손에 마비가 와서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그 시간 동안 그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던 날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연주가 아닌 감상을 하면서 연주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비로소 들을 수 있게 됐고, 평론을 하며 글을 썼다. 그리고 <매일음악워크북>이라는 책을 냈으며, 음악학원장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인생의 암흑기를 통해 음악적 폭을 넓혀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연주가 잘 안 돼 침체에 빠질 때면 과거의 나를 보듬듯 감싸 안아 줄 수 있게 됐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어.” 몸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문제는 쉽게 설명되지 않지만, 보이지 않더라도 진심어린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것 역시 지난 7년의 세월 때문이다.

피아노, 외출하다
이후 학생 레슨부터 대학강의까지 숨 가쁘게 살아왔다. 아무 연고 없는 당진에 내려오게 된 것은 사실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전과 가까운 작은 도시에서 여유를 갖고 충전하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었다.

이재향 씨는 “고등학생 때 피아노 레슨을 받으려 기차와 버스를 몇 번 씩 갈아타고 대전과 서울을 수없이 오갔다”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우리 지역 학생들 중에서도 그렇게 힘들게 배움을 이어가는 친구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에 내려와 여유롭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지역에서 참스토리앙상블을 창단했고, 지난해에는 충남교향악단 순회연주에서 당진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협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달 4일에는 피아노를 들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피아노, 외출하다>를 주제로 남산공원 팔각정 야외무대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그는 “무엇보다 음악회의 문턱을 낮추고 싶었고, ‘이런 사람도 당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피아노를 꺼내들고 광장으로 나가게 됐다”며 “관객과 소통하며 서로 공감하는 공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제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언젠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재향의 연주는 참 좋았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게 음악가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닐까요?”

 

>>  이재향 피아니스트는
- 대전 출생
- 대전중앙초·충남여중·호수돈여고 졸업
- 서울대 음대 피아노 전공 우등졸업
- 서울대 대학원 음악학과 실기 수석졸업
- 오스트리아 베엔나 국립음대 디플로마
- 한국교원대·나사렛대·국립충주대
  겸임교수 역임
- 수청동 더피아노스토리 음악학원장
- 당진 참스토리앙상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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