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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7.06.16 21:15
  • 수정 2017.06.22 20:44
  • 호수 1163

원효의 깨달음을 담은 절
당진지역의 문화재를 엿보다 11 영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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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물결처럼 모든 것은 허상”
당 태종의 딸 영랑공주에 의해 창건

영랑사는 신라와 당나라가 나당연합군을 결성해 백제를 멸망시킨 3년 뒤인 664년 창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영랑은 그림자와 물결을 뜻한다. 즉, 모든 것은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의미로 불교의 공(空)사상을 말하고 있다.

대웅전과 범종
영랑사 안에는 충남도 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충남도 문화재자료 221호로 지정된 범종이 있는데 대웅전은 조선 중기 목조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좌상과 칠성탱화 등이 봉안돼 있다. 하지만 축조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축조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대웅전의 지붕을 뜯어 상양문을 확인해야 한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왜구에 의해 망가졌던 대웅전은 숙종 때 다시 복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범종의 경우 불교 의식에 쓰기 위해 1759년 만들었다고 전해내려온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까지 각성시켜 구원되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영랑공주에 의해 창건
한편 영랑사는 당나라 태종의 딸인 영랑공주에 의해 창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원효대사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길을 포기했지만 의상대사는 계획대로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났다. 당시 당나라 왕실과 친분이 두터웠던 법장스님과 관계를 쌓았던 의상대사 또한 왕실과 교류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의상은 원효의 깨달음을 왕실에 전했고 영랑공주는 이를 듣고 당나라의 안녕과 불도의 전파, 원효의 깨달음을 담아 자신의 이름을 딴 절을 창건하게 됐다고 한다.

원효와 얽힌 이야기들
영랑사는 원효대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던 곳이 영랑사 인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화성의 남양만과 고대면 당진포리 인근이라는 학설이 있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당진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651년 경 육로를 통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관군에 의해 실패했고 661년 다시 시도했는데 이때 당진포가 당나라의 수군이 주둔했던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기를 실었던 배를 통해 당나라로 이동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템플스테이 실시
한편 영랑사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365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1박2일 동안 불교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영랑사 주지 도문스님은 “영랑사 템플스테이를 통해 참가자들이 심신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미니인터뷰] 주지 도문

“전통사찰의 모습 갖출 것”“영랑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찰입니다. 하지만 장엄한 사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전통적인 가람구조를 갖추고 불교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랑사가 예전처럼 당진의 대표적 사찰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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