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 산책 9]
생명과 평등을 노래하다

당진시대l승인2017.06.19 08:00l(1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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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방에 동학이 전래된 이후 동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남과 해서지방으로의 진출이다. 호남, 해서지방은 내포지방과 육상은 물론 배를 이용한 해상교류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내포지방의 지리적 특성이 동학을 전국으로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동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해월 최시형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최시형은 1884년 공주 마곡사 인근 가섭암이란 작은 암자에 머물면서 내포지방 포덕에 힘쓰는 한편, 호남지방을 자주 출입하면서 익산, 부안, 고창 등에 동학을 전파하는데도 주력하였다.

그 결과 1885년 이후에는 호남 북서부 지방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1880년대 후반에는 호남 전역으로 동학이 확산되어 갔다. 이때 동학에 입도했던 인물들이 부안의 김낙철, 익산의 남계천, 고창의 손화중, 태인의 김덕명, 김개남이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보다 늦은 시기인 1890년 이후에 동학에 입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동학이 사도로 규정되어 조선 조정의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동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생명존중 사상과 평등사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동학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생명을 존중하고 어떤 생명도 경시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신분의 차별이나 귀천의 차이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실제로 수운 최제우는 모든 사람은 귀천이 없다하여, 스스로 부리던 여종 둘을 면천시켜,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았다.

해월 최시형은 동학교단에서 천민 출신인 남계천을 호남지방 동학조직을 대표하는 호남좌우도편의장 겸 도접주로 임명하여 평등사상을 앞장서 실천하였다. 이는 동학이 실현하고자 했던 신분차별, 계급타파의 평등사상이 구호로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동학이 보여준 실천적 평등사상은 계급과 신분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던 조선민중에게 구원의 메시아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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